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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시 첫 여성 시의원으로 출발하며.....

안양시의원 심규순

조선의 예종임금이 죽었을 때다. 예종의 다음 보위에 오른 사람은 그의 아들 제안군이 아닌, 수양의 맏아들로 단명한 의경세자 둘째아들 자산군(성종)이다. 이는 한명회와 세조비 정희왕후 윤씨와의 정치적 협상이기도 하지만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 한씨의 정성(로비)의 결과이기도 하다.
한씨의 아버지 한확은 명 태종의 매제이며 명의 인종이 부마로 삼으려 하였기에 세조가 정변 후 명의로부터 명의 인증을 받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인수대비는 왕실의 여인으로 보기 드문 유학자이며 범, 한, 국 3자체의 불서를 남기기도 했다. 조선의 여인들의 규범을 만들고자 했던 그녀는 1475년 (성종6년)7장 3권으로 된 내훈을 편다. 한글로도 번역하여 펴낸 이 책의 골자는 여성은 아버지, 남편, 그리고 아들을 따라야 한다는 삼종지도 이다.
법도에 엄격했던 그녀는 성리학 기준에서 벗어난 며느리(폐비 민씨)를 내쫓고 죽였다. 폐비 민씨의 아들이 곧 연산군이다.
불교신자였지만 정치적으로는 유교를 지향했던 그녀의 인과응보인지 인수대비 역시 연산군의 손찌검에 의해 죽고 만다. 금강경을 필사하고 중종의 어머니인 정현왕후 와 29편 2805편의 불경을 간행 했던 그녀의 높은 학문은 정작 불교의 자비가 아닌 여필종부를 조선의 덕목으로 삼는데 일생을 바쳤다.
조선 초기는 훈척신과 사림파로 정치적 갈등으로 나누어졌다.
그러다 문정왕후 사후에는 훈척신이 사라지고 집권사림 내부의 당정싸움 형태로 정치는 접어든다.
사림파는 성종 때 여성의 재혼을 금지시켰다. 중종 때는 재가한 여인의 친정아버지의 관직마저 삭탈한다. 조선 초기까지 여성들의 경제적 지위는 남성과 같았다. 재산상속도 남녀 균분제가 이뤄지고 자신의 도장으로 재산을 처분하고 재산과 관련된 소송도 적극적이었다.
혼인도 남귀여가혼으로 신랑이 처가살이하다 자식을 낳고 그간 모은 돈으로 살림을 장만하여 시댁으로 들어갔다. 시집살이가 늦은 것이다.
중종 때 정권의 중심이었던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는 사회질서를 남성중심사회로 만들어갔다.
문정왕후 사후에 재등장한 사림파는 재산상속과 제사봉사의 권한을 박탈한다. 재산상속에서 사위나 외손이 처가와 외가의 재산분배에서 배재되었다.
이에 따라 처가와 외가를 따라 거주 할 이유가 없어 부계 친족 중심의 동족 부락이 생긴다.
부의 분배가 적장자에게 상속되면서 사회는 비로소 천석꾼 만석꾼의 대지주가 탄생하게 되니 여성인권의 하락은 또 다른 사회적 문제를 만든 것이다.
오늘날 여권신장은 중요한 사회적 관심이다. 조선의 모든 것이, 아니 우리나라 모든 역사가 여성을 노비화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인권을 왕실의 여성의 권력자가, 시대적으로 개혁적으로 인지해온 사림파에 의해서 축소되어와 급기야 조선 말기에 남존여비가 만연된 것이다.
2006년 7월 1일, 제5대 안양시의회가 시작되었다.
우리의 역사에서 인간의 평등과 즉 양성평등 정책은 여성이라는 성별의 구분이 아닌, 당시 보?혁의 정치적 이념에도 인간을 위한 박애정신이 근본임을 되새기며, 안양시 첫 여성 시의원으로서 진정한 소임과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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