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10시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남양주시범공단(주)'.
팔당댐에서 방류한 물이 그대로 흐르는 한강과 불과 200여m 거리에 위치해 있고, 왼편으로는 한강과 직접 이어진 도심천과 맞닿아 있는 이 아파트형공장 입주업체들은 집중호우로 간밤을 뜬눈으로 지샜다.
이곳에 입주해 8년째 절삭기(큐텍스)를 제조하고 있는 태우정밀 직원 20여명은 전날 250mm의 집중호우가 쏟아져 비상연락을 받고 나와 복도에 각종 자재와 기계를 수북히 쌓아놓았다.
태우정밀 부품가공·조립실이 공장 지하1층에 있어 자칫 범람한 물이 출입구 틈새로 쏟아져 들어올 경우 수십년간 공들여 개발한 제품과 수억원에 달하는 기계들이 한순간 물거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태우정밀 이주식(54) 상무는 "물은 차오르고 막을 길은 없고… 도무지 어떻게 할 수 없었다"면서 "게다가 어제(16일)가 일요일인지라 모래와 마대주머니를 구할 수 없었다"며 급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이 상무는 "어차피 업체들은 수해피해를 입더라도 정부로부터 보상받을 길이 없고, 그렇다고 보험상품이 마땅한 게 없기 때문에 우리같은 영세공장은 한번 피해를 입으면 재기가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이날 오후 8시가 돼서야 남양주시청에서 모래 5t과 마대주머니를 지원했지만 이미 인근 전원빌라 등 주택가가 침수된 뒤였고 한강물이 계속 차올라 지하1층 공장을 덮치기 직전이었다.
출입 문턱으로 물이 넘쳐 흐르기 전 가까스로 모래주머니를 만들어 문앞에 쌓아올릴 수 있었다.
이 상무는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모래주머니 쌓는 팀과 지하1층 부품 및 완제품 이동팀으로 나눠 분주하게 움직였다"며 "중요한 것만 일부 옮겨놓고 비가 멈추기만을 기다렸다"고 말했다.
93년도에 아파트형공장(A·B) 2개 동으로 지어진 남양주시범공단은 이미 지난 95년 한차례 수해를 입은 바 있다.
한강물이 공장 B동을 덮치면서 지하에 있던 변전기가 고장나 입주해 있던 20여개 업체들이 공장가동을 중단해야 했다.
같은 위험은 매년 찾아왔고, 입주업체들은 장마철만 되면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렇다고 불법인 줄 알면서 변전기를 옥상으로 올릴 수 없는 노릇이고 비가 언제 얼마나 내릴 지 예측하기도 어려워 매번 발만 동동구르는 신세였다.
남양주시범공단 관리소 최종락 전무는 "여기는 지대가 낮기 때문에 상습적으로 침수되는 지역"이라며 "공장 옆에 배수펌프시설이 있어도 어제같은 경우는 무용지물이었다"고 말했다.
태우정밀 이 상무도 "폭우가 내리면 매년 이런 상황을 반복해야 하지만 피해를 입어도 하소연 할 곳이 없다"며 "A동 지하2층에 위치한 변전기가 물에 잠겨 전기 공급이 끊겨도 자체적으로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남양주시범공단은 피해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한편 정부가 지자체에 내린 '자연재난 조사 및 복구계획 수립지침'에는 공장 수해피해보상에 대한 언급조차 없고, 이를 소관하는 산업자원부 보상규정에도 공장과 관련한 피해보상 내용이 전혀 없다. /오흥택·문상훈기자 msh@k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