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를 간단하게 정리하여 표현한다면 통일과 분열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춘추전국 시대를 거쳐 진(秦)나라로 통일이 되었지만 한(漢)나라 이후 다시 삼국시대로 분열되고, 다시 진(晋)나라로 통일되었다가 5호16국으로 분열되고 이후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였으나 당나라 이후 다시 5대 10국 시기를 거친 후 송나라고 통일된다.
이렇듯 통일과 분열을 반복하면서 중국의 역사는 중앙집권적 정치와 지방분권적 정치가 자연스럽게 발전하였다. 이러한 특징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에도 중앙과 지방의 조화 및 대립이라는 정치적 모습으로 발전하여 지금까지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중국의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정책을 따르면서도 지방정부의 발전을 우선 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을 잘 나타낸 말이 “上有政策, 下有對策”이라는 말이다. 해석하면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 대책이 있다”는 뜻이다.
필자가 3년 전 중국 광동성 광주시 정부와 “신용평가시스템”을 광주시에 구축하기 위한 프로젝트 사업타당성 조사를 할 때이다. 당시 중국은 “신용평가시스템”이 없었고, 이를 위해서는 금융기관간의 협조 및 정보공유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사업이었다. 광주시 금융 정책 결정자와 이러한 문제에 대해 토론하던 중 만약 지방정부에서 먼저 사업을 추진하다가 중앙정부와 충돌이 생기면 곤란하지 않겠냐고 질문을 하였다. 그러자 “그건 그 때 가서 생각하면 된다. 좋은 시스템이 있으면 먼저 시범적으로 운영하면 된다. 우리가 하는 시스템이 좋다면 중앙에서도 이 시스템을 도입할 것이다”라고 명료하게 답하였다.
중국이 1989년 천안문 사건 이후 외국자본이 중국에서 철수하고 대중국 경제제재가 실행되자 경제 발전에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사상적으로는 보수파의 득세를 견제하고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를 활성화 시키기 위해서 1992년 등소평이 직접 남순강화(南巡講話)를 실시하여 개혁개방을 직접 진두지휘하게 된다. 심천, 하문, 주해를 거쳐 상해에서 마무리된 남순강화는 중국의 연해지역의 경제발전정책이 성공하였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며 지방의 발전을 기반으로 중앙의 발전을 도모하는 중국 사회주의 시장경제 정책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필자가 경제고문으로 있는 중국 장쑤성 난징시[南京]는 남경대학살로 유명한 곳이지만 지금은 전세계 다국적 기업의 각축장으로 변한 지 오래되었다. 남경시정부의 외자유치 및 기업유치 활동을 보면 아주 적극적이고 남경시에 진출한 외자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시스템도 One-Stop 방식으로 아주 신속하게 대응한다.
외자유치 담당 부서 소속의 공무원 뿐만 아니라 남경시정부 공무원 전체가 외자 및 기업유치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몇 달전 남경시 시장이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에도 짧은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한국기업 유치를 위해 부산, 광주, 서울을 돌며 강행군을 하여 모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남경시에서 북동쪽으로 10㎞ 정도 떨어진 경제기술개발구. 총 400만평 규모의 단지 내로 진입하자 바로 'LG산업원'(産業園)이라는 대형 입간판과 함께 'LG로(路)'라는 도로명이 있다. 외국 기업의 이름이 지도에 표기되는 공식 명칭으로 채택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남경시가 외국 기업을 유치하는 데 얼마나 지극 정성인 지 알 수 있다.
한국의 지방정부도 최근 외국에 직접 사무소를 설치하거나 직접 발로 뛰면서 외자유치 및 기업 간 교류에 열심인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한국과 외국 지방정부간의 교류를 활성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업 간의 민간교류를 확대하고 지원한다면 더 많은 성과들이 나타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