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때론 시기심과 탐욕의 주체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 대상이 되어 아파하기도 한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이성적 바람과 관계없이 이러한 불·유쾌한 시기심과 탐욕이라는 불편한 현상을 자주 만나게 된다.
우리는 가끔 시기와 탐욕이라는 현상을 동일한 의미로 혼동하기도 한다. 엄밀히 말하면 시기와 탐욕은 동일한 의미가 아니다. 탐욕은 최종적 목표와 방향을 상대의 소유를 자기의 것으로 탈취하려는 마음을 말하며, 상대방의 운명이나 결과에는 관심이 적다.
그러나 시기심은 상대의 소유를 자기의 것으로 탈취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상대방의 파괴와 몰락을 바라고 추구하는 심리를 말한다. 탐욕보다 시기심의 심리가 좀 더 복잡하고 공격적이다.
시기심은 대부분의 경우, 시기 받는 사람의 행동의 결과로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시기하는 사람의 내부에서 발생한다. 즉 본질적으로 시기심의 발생 근원은 타자가 아닌 자기 자신의 내부로부터이다.
시기심은 우리 가까이 있는 흔한 현상이므로 많은 사람이 경험을 해 보았을 것이다. 남을 시기하기도 하고, 남에게 시기를 당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한다. 남을 시기하는 것도 고통스럽고 남에게 시기를 받는 것도 고통스럽다. 시기심에는 승자도 없고 무언가를 얻는 자도 없다. 주체가 되든, 대상이 되든 오직 손실과 패배만 있을 뿐이다.
시기심의 대상은 경제력, 사회적 위치, 신체적 특성, 가족관계 등 자신보다 우월해 보이는 모든 것이 해당될 수 있다. 용서와 화해, 사랑과 구원이라는 특질을 가진 종교성에도 시기심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어린 나이에 시기심 또는 그 전초단계가 발현되는 경우에는 발달과정이 단절되거나 선악을 혼동하는 등 정신에너지가 복잡해져서 자기애적 성격장애까지 발전할 수도 있으며 심리상 정체성이 허약해지고 정신의 빈곤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시기하는 사람들의 특징으로는 시기 받는 대상을 과장하여 느끼거나 부당한 평가를 내려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심리적 경향을 띤다. 가끔 시기 받는 사람이 시기하는 사람에게 자신은 손해를 입힐 의도도 없고 숨기고 있는 선함도 없다고 설득하려는 경우가 있는데 대체로 이런 경우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시기심에 대한 가장 좋은 대응책은 우리가 ‘선’을 바라보고, 그 선함이 우리들을 건강하게 만들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의 감정이 이처럼 시기심이라는 색채를 띠고 표현되는 것은 우리가 지닌 선한 감정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기심을 느끼는 자는 시기심을 느낄 때 경험했던 것만큼의 강렬함으로 선함에 대한 감각을 즐거워하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물론 우리는 완전히 선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우리들 사이에 존재하는 작은 ‘선함’을 추구하고 노력하면 우리는 하나가 되고 시기심을 이길 수 있다. 우리가 용기와 기쁨을 가지고 ‘선함’을 바라 볼 때 ‘시기심’ 보다 훨씬 좋은 ‘선함’이 함께하는 아름다운 성숙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