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사람은 이 씨앗이 너무나 소중해 고이 간직하고자 좋은 천으로 꽁꽁 싸매서 아주 좋은 상자에 넣어두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씨앗을 예쁜 화분에 심어 햇빛이 잘 드는 창가에 올려두고 정성스럽게 물을 주며 햇빛을 잘 받을 수 있도록 방향까지 돌려가며 정성스레 길렀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냥 자신이 잘 다니는 곳에 심어놓고 그냥 오고 가며 잘 자라는지를 살펴보며 자연 그대로 놓아두었습니다.
이 세 사람이 만난 이 작은 씨앗의 변화는 어떠하였을까요?
우리는 청소년들을 만날 때 이 세 가지 형태로 만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끔 청소년들을 성인의 틀에 맞춰 꽁꽁 얽매여 두면 결국에 청소년들은 자신의 숨겨진 재량을 발견하지 못 한 채 숨막힘을 호소하지도 못하고 시들어 갈 것입니다.
청소년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면 아이들이 직접 신청하기 보다는 적극적인 부모님들이 신청하는 경우를 종종 만나곤 합니다.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는 어른들은 이 사회에 적응 못하는 청소년들로 성장하게 합니다. 어려운 일이 발생하면 누군가가 해결해 주어야 하는데 그 해결자를 찾지 못하면 청소년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우왕좌왕합니다.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지 자신의 의지가 박약한 청소년들로 자라날 것입니다.
좀 거세든 해도,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꿈을 키워가는 청소년들을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요즘입니다. 너의 생각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이 “글쎄요~” “좋은데요…” “잘 모르겠어요”라는 청소년들이 참 많습니다. 조금만 구체적으로 대답을 요구해도 어려워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해 본 적이 없고, 다양한 상황에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본 경험이 없는 청소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의 가치를 스스로 발견하고, 삶의 의지를 키워갈 수 있는 여건을 어른들은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스스로 자신의 삶을 창의적이고 자발적으로 주도해갈 수 있는 청소년들이 될 수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사회적 참여를 이야기하면서 청소년들이 자신의 의견을 정확하게 표현하면 당돌한 아이들로 받아들인다거나, 청소년들에게 개성을 이야기하면서 나름대로 자기 표출을 하는 아이들을 보면 문제아로 낙인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자발성을 이야기하면서 스스로 창의적으로 활동하는 아이들보다는 부모님, 선생님 말씀에 순종하고 잘 따르는 아이들이 더 존중받는 사회가 우리 사회이기도 합니다.
어릴 적 나는 안 그랬는데 라고 이야기하기 보다는 지금의 청소년들이 자신의 꿈을 키우며 삶의 가치와 의지를 길러갈 수 있도록 참여의 장을 많이 제공하고 스스로 자아와 끼를 발산할 수 있도록 열린 공간을 많이 만들어주는 것이 성인들의 세대 공감 방법이요, 청소년들의 바른 성장을 촉진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어떤 청소년들을 길러가고 있는지, 어떤 청소년들을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는지 스스로 되묻고 반성할 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