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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진흥, 지원에서 투자로

윤한택 경기문화재단 전통문화실장

 

밀가루, 설탕, 면화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3가지 모두 색깔이 희다는 것이다. 그래서 ‘삼백’이라 한다. 그 다음에는 바로 이어 ‘산업’이란 말이 따라온다.
일제로부터 해방, 분단을 거쳐 4.19혁명으로 붕괴되기에 이른 제 1공화국의 주력 산업이 ‘삼백산업’이다. 그 생산시설은 이승만 정부로부터 불하받은 일제 귀속재산을 기반으로 하고, 그 원료의 대부분은 미국의 경제 원조에 의존하여 경영하였다.
그러므로 삼백산업은 제1공화국, 이승만 정권과 운명을 같이 한 원조 경제의 대명사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이 시기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조기와 태극기를 바탕으로 굳게 악수하는 손이 그려진 밀가루 포대 그림이 눈에 선할 것이다. 그리고 강렬한 원색으로 물들인 내의 등 구호물품, 미군 탱크를 뒤따라가면서 외치던 초콜릿, 추잉껌에 대한 추억들이 뒤따를 것이다.
미국에 의한 대한 지원, 경제 원조는 제1공화국의 종말과 궤를 같이하면서 그 자취를 감추고 대신 자금을 꾸어주는 차관 형태로 한미 경제 관계가 변화하였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현상적으로 보면, 거저 주는 것에서 꾸어주는 것으로, 말하자면 지원에서 투자로 그 관계가 바뀌게 된 것이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 그 위에서 가능했음도 우리는 다 안다.
그런데 한미 경제관계가 지원에서 투자로 바뀌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이른바 원조경제체제는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 부흥과 관련된 마샬 플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는 연합국의 맹주이던 미국이 태평양 연안에 내버리고 있던 과잉 생산의 결과물인 잉여물자를 처분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라인강의 기적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런 50년대를 통해 전후 복구 사업이 일정한 궤도에 오르고 그에 비례하여 잉여생산물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렇게 세계자본주의 진영에 새 판이 짜여지고 있던 반면에 사회주의 진영에서는 중소 이념분쟁으로 상징되는 균열 조짐이 심화되고 있었다. 그러한 냉전 최전선에 있던 한반도의 남쪽 대한민국에서 라인강에 비견되는 새로운 기적이 요청되고 있었고, 기존에 그 역사적 사명을 마친 원조 대신 새로운 차관에 그 사명이 바꿔 부여되고 있었던 것이다.
한강의 기적이란 말이 보여주듯 지난 20세기 60년대 이후 대한민국은 그 역사상 유례가 없는 고도성장을 이룩하였다. 그야말로 파이는 엄청나게 커졌다. 그러나 부풀려지기만 하는 풍선은 그를 견딜 만한 내부 구심력이 없이는 터져 버리고 마는 것이 정해진 이치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동안 파이를 나누어먹는 문제와 관련하여 적지 않은 대가를 치러 온 것도 사실이다. 노동, 환경, 문화, 복지 등의 비용이 그러하였고, 그것은 이윤을 창출하지 않는 그야말로 적선에 가까운 지원의 성격으로 치부되어 왔다.
세기의 전환기를 전후하여 파이를 키우는 국제적 여건에서도 획기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이른바 오일 쇼크가 몰고 온 신보호무역주의의 등장이 그렇고, 국제 구제금융 사태를 몰고 온 신자유주의 체제, 자유무역협정을 강요하는 초국적 자본의 세계화의 출현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그야말로 무한 경쟁 시대에 돌입하였고, 그 만큼 개별자본, 총자본의 불안정성도 더욱 커졌다.
이제 국내외 자본도, 공공 기금도 그 사회의 원심력으로서의 경제와 균형을 이루는 구심력으로서의 문화에 대한 지원 기금에서 빠듯해졌을 뿐 아니라 그 지원의 성격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여졌다고 보여 진다. 경제 주체에게도 문화 주체에게도 이제 더 이상 지원이란 용어는 적선이 아니라 모멸인 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양편 모두 옹골찬 투자의 길을 찾아갈 때라야만 보다 튼튼한 타원의 2 초점으로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지원에서 투자로! 바야흐로 이 구호가 단순히 문화예술진흥의 영역에서만 부르짖어져야 할 것이 아니라 지속적 경제 발전을 위해서도 필수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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