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0년대에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각 영역에 걸쳐 기성세대의 모든 것에 대한 도전이 빚어졌다.
당시 68년을 기점으로 세계적 저항운동이 일어난 이유는 전후의 경제번영과 자유를 누리던 젊은이들이 시대에 뒤떨어진 대학교육을 경험하면서다.
이 젊은이들에게 혁명의 바이블로 여겨졌던 것이 ‘젊은 세대를 위한 삶의 지침서’가 원제인 ‘일상생활의 혁명’(시울 펴냄)이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다시 상황주의인터내셔널의 바람이 불고, 관련 저작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10월과 올해 2월 프랑스 전역을 뒤흔든 ‘방리유의 봉기’와 ‘반최초고용계약 투쟁’의 구호들 속에서 68년 혁명 당시 불었던 운동의 부활을 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원동력이라 평가받는 상황주의인터내셔널 주장이 주목받게 된 것이다.
때를 같이해 상황주의인터내셔널의 핵심 이론가 라울 바네겜의 책들이 새단장을 하고 출간된 것은 당연해 보인다. 1967년 처음 출간된 이래 68년 혁명 세대의 지침서로 여겨졌던 이 책은 혁명의 정신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프랑스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드보르와 함께 ‘20세기 최후의 아방가르드’로 불리우는 상황주의인터내셔널의 핵심 이론가다. 벨기에 출신으로 문헌학을 공부한 그는 1970년 상황주의인터내셔널을 탈퇴하기까지 일상생활을 변혁하는 것이 진정한 혁명이라는 상황주의자들의 구호를 체계화했다.
그가 주장하는 모든 이야기속의 중심어는 ‘스펙터클’이다. 바네겜을 비롯한 상황주의자들에 따르면, 현대세계의 일상생활이 소외받고 있는 것은 스펙터클이 일상생활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스펙터클은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이미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이다.
능동적으로 보는 어떤 실체이기 이전에 우리에게 수동적으로 보여지는 외양이라는 주장이다. 즉, 이미지로 매개된 소외의 또 다른 이름이 스펙터클이라는 것.
바네겜은 이 의미를 연극이 잘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연극이 배우와 관객을 분리하듯이 스펙터클도 보여주는 자와 보는 자를 분리하고, 관객에게 특정한 역할(배역)을 맡은 배우와 동일시하도록 만들 듯이 스펙터클도 보는 자에게 보여주는 자와 동일시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연극을 일상과 연결시켜 스페터클의 의미를 넓히고 있다.
그는 이같은 연극의 논리가 일상생활이라는 무대에서 반복, 현대인에게 권태롭고 단조로운 삶을 이어나가는 역할이 맡겨졌다고 이야기한다.
현대인이 이처럼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것은 소비자본주의의 권력자들로 덧없는 명분과 국가, 민족 등 가상의 단일체로 유혹해 그들이 자신들의 비참함을 사랑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일상생활의 혁명은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
저자는 구속, 유혹, 매개라는 권력의 세 가지 억압양식에 맞설 수 있는 자기 실현의 세가지 원천을 내세운다.
그것은 창조와 사랑, 유희에 대한 열정이다.
/류설아기자 rsa@kg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