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니면 산 중에 사는 생명들의 삶이 산 아래 사는 나 같은 생명들의 삶보다 한결 여유롭고 평화롭기 때문일까.
산 중의 일을 나 같은 사람이 알 수는 없는 일이다. 흰 참나무에 기대 있던 몸을 일으킨다. 한 걸음 뗀다. 몇 걸음 내딛는다. 앉았던 자리를 돌아본다. 흰 참나무 말없이 서있다. 앉았던 자리는 그 사이 바람이 쓸어갔는가. 흔적도 없다. 저녁 바람에 서성이던 나뭇잎만 남아 있을 뿐이다. 걸음을 옮긴다.
산 속에 사는 생명들에게는 산길에 드리운 어둠이 익숙하겠지만 산 아래 사는 나 같은 생명들에게는 익숙하지 않다. 두려운 일이다. 등 뒤로 흰 참나무 숲과 앉아 있던 자리와 나뭇잎들과 무릎 위를 지나던 다람쥐와 바람들을 남긴다. 흰 참나무에 기대 앉아 있던 마음을 남겨 놓는다.
왔던 길을 따라 걷는다. 지나 온 길이다. 지나 온 길을 따라 산을 내려간다. 지나 왔던 길이라고 같은 길은 아니다. 겉모습만 비슷하게 보일 뿐이다. 형태만 엇비슷해 보일 뿐이다.
나무들의 모양도 다르고 나뭇잎들의 흔들림도 색깔도 다르다. 불어오는 바람도 다르다. 도토리들을 주우러 산길을 지나는 다람쥐들도 다르다. 다른 것이 어디 그뿐인가. 지나는 이도 다르다.
산에 깃들어 사는 수많은 생명들의 온기를 받은 마음이 오직 저 혼자 잘 살기만 바라던 마음과 같을 수는 없다. 나무들과 함께 구름 위를 걷던 마음이 욕심 가득한 세상길을 지나던 마음과 같을 수는 없다. 흰 참나무 숲에서 바람과 나무와 마음을 나누던 마음이 마음을 나눌 줄 모르고 저 혼자 제 이야기만 하던 마음과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늘 같은 오늘이라고 할지라도 어제와 오늘이 다른 날인 것처럼 말이다.
한 날 한 순간도 같은 날 같은 순간은 없다. 늘 같은 날인 것 같지만 늘 새로운 날이다. 산이 늘 새로워지듯이 말이다. 늘 바람 소리만 황량하던 겨울 산에 여리고 푸르른 새싹들이 돋으며 봄이 오듯이 말이다. 나뭇잎 무성하고 숲 울창해지는 여름이 오듯이 말이다.
여름 산의 계곡물에 발을 담글 사이도 없이 나뭇잎 먼저 떨어지는 가을이 오듯이 말이다. 깊어지는 가을 산에 마음을 씻을 사이도 없이 겨울이 먼저 오듯이 말이다.
그렇게 삶도 매 순간 변하며 새로워지고 있는 것이다.
나뭇잎들도 아는 것을 나만 모르는 것이 아닐까.
다람쥐들도 아는 것을 사람들만 모르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의 마음만 새로워지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 혼자 오고 가는 계절이야 어찌 할 수 없지만 제 마음이야 제 스스로 새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음만 새로워지면 늘 다니던 길도 새 길이 되는 것이다.
마음만 새로워지면 삶도 새로워지는 것을 사람들만 모르는 것이 아닐까.
나만 모르는 것이 아닐까.
어디쯤 왔을까.
얼마나 내려 왔을까.
어둠이 깊어진다. 발에 밟히던 나뭇잎들이 모두 거뭇해 보인다. 발걸음을 멈춘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닫으며 숨을 고른다. 깊은 산중에서 맞는 고즈넉한 저녁이다.
바람조차 고요하다. 나뭇잎들도 잔잔하다. 나무들도 모두 숨을 죽이고 나를 보고 있는 것만 같다. 새들의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모든 것이 멈추어 선 듯하다. 깊은 숲 속에 나만 홀로 서있어 길을 가는 듯하다. 석양을 맞는 겨울 시골집의 저녁처럼 평온하기만 하다.
새 한 마리 푸드덕 날개깃하며 날아간다.
저 새는 아직도 제 집에 가지 못한 모양이다.
이제 제 집으로 돌아가겠지.
돌아가 편안한 저녁을 맞이하겠지.
평온한 날들을 맞이하겠지.
바람조차도 고요한 숲 속을 나 홀로 지난다.
멀리 불빛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