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 상황에서 개봉하는 ‘디어 평양’은 실제 북핵 실험보다 훨씬 강력한 폭발력을 가진 영화다.
재일 조선인 2세 양영희(42) 감독이 10년에 걸쳐 카메라에 담은 자기 가족의 일기 ‘디어 평양’은 오늘을 사는 한국인에게 이보다 진실할 수 없는 북한 르포. 더불어 재일 조선인의 삶과 이 모든 것을 낳은 분단의 비극에 가슴 한켠이 아릿해지는 영화다. 그것은 답답한 현실 앞에서 혀를 끌끌 차거나 저 멀리 아프리카의 참상을 지켜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2004년 정월. 기분 좋게 술이 오른 아버지는 카메라를 들이댄 딸 영희에게 “빨리 시집가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미국 놈하고 일본 놈만 아니면 어떤 놈하고 해도 좋다”며 웃는다. 영희가 묻는다. “김치 못 먹고 한국말 못하는 한국 남자하고 김치도 잘 먹고 한국말도 잘하는 일본 남자가 있으면 어떻게 해요?” 아버지는 “그래도 일본 놈은 안돼”라며 잘라말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여느 한국 가정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이 가족에게는 기막히고 가슴 찢어지는 역사가 있다.
15살에 제주도를 떠나 일본으로 온 아버지는 당시 정세에 따라 북한을 조국으로 선택하고 열렬한 김일성 추종자가 된다. 결국 그는 금쪽같은 아들 셋을 모두 북송선에 태워보낸다. 6살 때 오빠를 모두 떠나보내고 부모와 홀로 오사카에 남은 영희는 커가면서 아버지의 결정과 사상에 점점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한 이질감은 때때로 만경봉호를 타고 찾은 북한의 실상과 오빠들의 현지 삶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더욱 깊어진다.
그러나 같은 것을 봐도 아버지는 여전히 수령님과 장군님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다. 어머니 역시 추워서 발에 동상이 걸렸다는 손자의 소식에 손난로를 한가득 싸 보내는 등 온갖 구호물자를 수시로 보내면서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다. “그래도 아들들은 조국의 사랑 아래 잘 있어”라면서.
영화에는 성인이 된 영희, 카메라를 들고 있는 양 감독의 얼굴은 나오지 않는다. 그는 다만 목소리로 가족과 대화를 나눈다. 이를 통해 감독은 자기 가족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솔직하게 전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투박하고 때때로 흔들리는 화면에는 이 가족의 10년 사(史)가 그 어떤 영화보다 드라마틱하게 기록됐다.
그리고 그 10년은 우리 모두의 10년이 돼 온몸을 휘감는다. 갈등과 화해, 반성과 치유는 그 형식만 다를 뿐 어떤 가정에나 존재한다. 관객이 마지막에 흘리는 눈물 역시 누구도 아닌 나의 아버지를 떠올리기 때문. ‘디어 평양’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를 향한 진실한 편지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됐으며 올해 베를린 영화제 아시아영화진흥기구(NETPAC)상, 선댄스 영화제 다큐멘터리부문 심사위원특별상 등을 받았다. 23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