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의 깊은 밤, 서울 압구정동의 한 바에서 전진과 마주했다. 그의 신청곡들은 ‘댄싱 머신’ 전진에게 댄서의 꿈을 키워준 ‘로망’이었다.
98년부터 9년째 신화로 활동중인 그는 최근 솔로 가수로 데뷔, 첫 싱글 앨범을 냈다. “제 우상들을 보니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노래가 좋은 건 그런 건가 봐요. 슬픔과 추억이 한꺼번에 떠오르네요.” 전진의 눈이 어느새 그렁그렁해졌다.
◇양어머니가 생모 찾아줘
전진에겐 세 명의 어머니가 있다. 생모는 전진을 낳은 후 아버지와 이혼, 그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는 두 번째 어머니를 맞았지만 다시 불화가 찾아왔다. 이 시기는 지금도 그에게 아물지 않은 상처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지금의 어머니와 다복하게 살고 있다.
“친어머니 얼굴을 불과 몇 년 전까지 몰랐어요. 어느 날 지금 어머니가 ‘평생 기억에 남을 선물을 해줄게’라고 말씀하셨죠. 저를 가여이 여기셔서 생모를 찾아 만남을 주선했던 겁니다. 그런 분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전진은 4년 전 친어머니와 만난 한 시간 동안 그 자리에 앉아 함께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왜 날 두고 가셨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러나 그때 이후 생모와 만나지 않고 있다. 뒤늦게 재가한 어머니에게 전진과 닮은 아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서 동생에게 같은 아픔을 주고 싶지 않아서란다.
“연습생 기간, 신화 활동을 하며 아무리 힘들어도 친어머니 없이 산 어린 시절에 비하면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나중에 가수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도 꼭 유명해져서 어머니를 찾겠다는 마음 때문이었죠.”
◇하나님께 의지했던 사춘기
가슴앓이로 지냈던 사춘기 때, 전진은 하나님께 의지했다. 두 번째 어머니와 살던 초등학교ㆍ중학교 시절. “엄마 밥줘”란 표현도 눈치 보여 맘 편히 하지 못했다. 방황에 방황을 거듭했다. 구원의 손길은 하나님이 계신 교회였다.
“교회 사람들은 절 다 사랑해줬어요. 굶고 다니던 제게 밥을 줬고, 집에 들어가기 싫던 제게 잠자리를 마련해줬죠.”
전진은 늘 기도를 했다. ‘어머니를 찾게 해달라’고. 이때 교회 찬양팀에서 기타도 배웠다. 지금도 하루 수십 번씩 마음 속으로 낳아준 어머니, 가슴으로 키워준 어머니의 안위를 빈다.
◇악동 아닌 속 깊은 청년
대중은 전진에 대한 큰 오해를 하고 있다. ‘악동’ ‘바람둥이’ ‘사고뭉치’. 그러나 신화 멤버들에 따르면 “속 깊고 정 많고 털털한 성격에 욕심 많은 놈”이란 평가를 들어왔다. 가요계 주당으로도 소문난 그지만 첫 싱글을 내고 발라드 가수로 변신한 지금, 주위의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홀로서기에만 매진하고 있다.
요즘 그는 집에 들어가면 방송 녹화 영상을 수십 번 돌려보며 모니터링을 한다. 그래서 다시 돌려볼 때마다 고칠 점을 발견한단다.
“지금이 제 인생에서 가장 마음이 편해요. 귀가하면 뻗어서 잘 수 있거든요.”/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