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기 지음
해동미디어 출판/304쪽, 1만2천원
옛날이나 지금이나 ‘글쟁이’라면 묘지명이라든가 책 서문처럼 남들이 청탁해서 쓰는 글은 모름지기 피하려 했다.
한데 이처럼 귀찮고 내키지 않는 글에서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펼치며 그것을 주옥 같은 예술로 승화한 인물이 있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 23살된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 1750~1805)가 문집 ‘초정집’(楚亭集)을 내면서 그 서문을 써 달라고 하자 연암은 거기에서 이런 말을 한다.
“아! 소위 ‘법고’(法古)한다는 사람은 옛 자취에만 얽매임이 병통이요, ‘창신’(創新)한다는 사람은 상도(常道)에서 벗어나곤 하는 게 걱정거리다. 진실로 법고할 줄 알면서도 변통할 줄 알고 창신하면서도 능히 전아(典雅)하다면 요즘의 글이 바로 옛 글이다.”
연암은 시는 그다지 즐기지 않았다. 그는 산문의 귀재였다. 초정집 서문에서 주장한 법고창신을 시종 시험하려 했다. 괴짜 민노인, 한양 거지 광문(廣文)을 과감히 문학소재로 발탁, 데뷔케 하는가 하면, 똥 치는 일을 하는 사람을 ‘선생’이라 추숭했다.
김명호(金明昊·54)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에게 연암은 마르지 않는 샘이요, 평생 화두다. 우직할 정도로 연암이라는 한 우물만 파는 그는 주변 많은 한문학도가 문화사 전반으로 관심 영역을 확대해 가지만, 오직 박연암(朴燕巖)에만 매진한다. 고전 국역전문기관인 민족문화추진회(민추)에서 지금껏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연암집’(燕巖集) 완역을 의뢰하자, 김 교수는 안식년 1년을 통째로 이 작업에만 매달렸다. 이를 포함해 2년만에 ‘국역 연암집’은 사거 200주기에 맞춰 2005년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김 교수는 1년을 더 연암집 정리에 쏟았다. 도서출판 돌배개가 민추와 판권계약을 하고 연암집 국역서를 재편집해 출간하기로 함에 따라, 새로운 판형에 맞는 수정작업을 벌인 것이다.
돌베개에서 전집 3권으로 최근 재정리돼 선보인 ‘연암집’은 나아가 번역과 각주를 수정 보완했으며 새로운 이본들을 추가 대조해 원문교감에 반영했다. 이 과정에서 김교수는 ‘국역 연암집’에서 발견된 “번역이나 인쇄상의 오류를 바로잡는 한편, ‘한문문집총간’표본점에 의거한 원문 구두(句讀)를 전면 교열하여 완역을 기하고자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박지원 문학이 “탈근대를 외치고 세계화를 지향하는 현대에도 전혀 낡지 않았다”면서 “연암은 당시 양반들의 고루한 사상과 복고적인 문풍을 혁신하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시대적 편견에서 벗어나 사물을 늘 새롭게 인식할 것을 촉구한 점이 연암 문학이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고전으로 빛을 잃지 않는 비밀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