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제 배운 한글 공부 복습차원에서 받아쓰기 시험을 볼 거예요. 모두들 준비되었나요? 자 그럼 선생님이 부르는 대로 천천히 연습장에 적어보세요.”
지난 7일 오전 10시 20분경. 시흥시 정왕동 1800의8 소재 정왕종합사회복지관(관장 유혜란) 2층 소 강의실에서는 받아쓰기 시험이 한창이다.
그런데 한글 받아쓰기 시험에 열중하고 있는 이들이 조금 흥미롭다. 한글을 막 깨우치기 시작한 유치원생들도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신입생들도 아닌 20대 초반에서 40대 중반에 이르는 주부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글공부에 열중인 이들이 정든 고국을 떠나 물설고 낯 설은 이역만리 남편의 나라, 대한민국으로 시집온 외국인 주부들이라는 사실을 접하자 이들의 힘겨운 ‘한국문화 적응기’에 경외감마저 느껴진다. 3천900여개의 크고 작은 공단이 모여 있는 시흥시 정왕동. 시화공단이 입지해 있는 특성 때문인지 정왕동 지역은 이주노동자 및 국제결혼가족이 다수 거주하고 있다.
2006년 9월말 현재 시흥시에 등록된 국제결혼 외국인 여성은 977명, 외국인 남성은 137명에 달해 국제결혼 이주여성 및 그 가족에 대한 관심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현실이다.
한글교실에서 만난 중국 한족출신 려건령(31·앞줄 왼쪽에서 네번 째)씨는 8년 전 취업연수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금의 남편 박광기(40)를 만나 2001년 결혼했다.
남편 박씨와의 사이에 네살배기 아들과 6살 딸을 두고 있는 려건령씨는 올해로 한국생활 8년째이지만 여전히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럽단다.
“시집와서 얼마간은 문화적 차이로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래도 같은 동양권이고 주변 국가라는 인접한 지리관계로 비교적 수월하게 적응하고 있지만 아직도 힘든 것은 ‘외국인 아내, 외국인 며느리, 외국인 엄마’라는 주변의 낯선 시선과 편견들입니다”라고 려씨는 말한다.
특히 려씨는 “자녀들이 커가며 가장 큰 고민은 교육문제에요. 어떠한 방법으로 지도해야 할지, 누구와 의논해야 할지 그저 막막할 뿐입니다”라며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그런가 하면 한국 생활 3개월 차에 접어드는 주부 초년생 킴리라(19·캄보디아)씨는 “피부색 등이 다른 낯선 이방인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거의 폭력에 가까울 정도이에요. 내가 한글교실과 같은 복지관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여하는 이유도 하루 빨리 한국문화에 익숙해져 주변의 이웃들과 함께 생활하고 싶을 따름 입니다”라고 익숙하지 않은 우리말로 떠듬떠듬 고충을 털어 놓는다.
정왕종합사회복지관 유혜란(47) 관장은 “국제결혼의 양적 팽창으로 결혼이민 여성 및 그 가족 수가 증가하고 있으나 의사소통 부족에 따른 개인 부적응, 부부·고부간 갈등 등과 같은 가족 내 부적응과 이에 대한 사회준비 부족 등이 정착에 애로를 겪고 있다”라며 “특히 국제결혼 이주여성 및 그 가족들이 가장 걱정하고 있는 자녀교육문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착마련이 시급하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정왕종합사회복지관은 중앙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으로 결혼 이민자 및 배우자, 자녀, 가족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 사회적응 훈련, 한국문화체험, 아동학습지원 등의 테마기획사업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