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최대절기인 부활절을 앞두고, 전통적으로 교회는 부활전 일주일을 성주간(고난주간)으로 지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입성 후 그 열렬한 환호와 호산나 찬양의 소리가 체 가시기도 전인 목요일 밤 제자들과 떡과 포도주를 나누며, 오늘날 성찬예배의 원형을 만드시고, 그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기도하시다가 가리옷 사람 유다의 배반으로 잡혀가 고통을 당하신 후, 다음날인 금요일 오전 십자가형을 당하시고, 목숨을 잃으십니다. 하루밤새 일어난 일이지요. 그로부터 3일후 예수님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교회는 주일로 정하고 예배드립니다. 그러니까 모든 주일은 곧 부활일인 셈이지요.
‘부활’은 영어로 리바이벌(Revival)이라 합니다. 이렇게 ‘리바이벌’(부활)한 삶을 소망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이라 하여도, 역시 일주일의 대부분은 세상 속에서 여러 사람들과 관계 맺고 살고 있습니다.
이들과의 삶을 관계 맺자면, 아무래도 세상의 논리인 서바이벌(Survival)한 삶을 살 수 밖에 없겠지요. 약육강식의 비정한 논리와 ‘정의로운 것이 힘있는 것’이 아니라, ‘힘있는 것이 정의로운’ 이상한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 말입니다.
이 속에서, 누군가는 돈을 벌고, 누군가는 돈을 잃고, 누군가는 올라서고, 누군가는 물러나며 삽니다. 대자연의 먹이사슬처럼 꼭 필요한 희생과 죽음이라면, 이렇게 논할 것도 없지만, 그저 아귀(餓鬼) 같은 다툼 속에 서바이벌(생존을 위한 경쟁)만 한다면, 인간의 세계는 점점 아수라장(阿修羅場)이 되고, 사람의 삶은 수라(修羅)(귀신)의 삶이 되고 말겠지요.
초등학교 때 성적표에 매겨진 ‘수,우,미,양,가’에 울고 웃었던 분들 많으시죠? 사람을 점수화, 서열화 하는 교육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그 안에 생각보다 심오한 뜻이 있더군요.
秀(수)는 빼어날 수秀를 사용하여, 무리 중에 아주 빼어난 인재임을 칭찬하고,
넉넉하다는 뜻의 優(우)는 넉넉한 지식을 갖췄으니 우수하다는 말이며,
美(미)는 아름답다는 뜻으로 그 노력하는 자세가 아름다우니 칭찬할 만하며,
좋을 량良의 良(양)은 양호하다, 그만하면 잘했다는 뜻,
제일 마지막의 可(가)는 옳을 가(可)를 사용하여, 아직 가능하다, 그만하면 됐다, 괜찮게 했다는 뜻으로 마지막까지 용기를 아끼지 않는 스승의 표현이랍니다.
반세기전 전쟁을 겪은 후 초토화된 시대를 다시 일구어야할 어린이들, 제자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용기와 격려를 아끼지 않던 스승의 마음이 담겨있는 함축적인 시와 같은 말이더군요. 영어식 평가인 F학점(fail) 실패했다(넌 실패했어, 낙제야)와는 차원이 다른 말이었는데, 본질은 꿰뚫어 보지 못하고, 현상만 바라보는 세태가 ‘격언’을 ‘평가 등급’으로 전략시켜, ‘우시장에서 고기 육질 등급 매기듯’, 우리 아이들의 삶을, 그리고 우리의 삶을 어느덧 등급 매기고 맙니다. ‘서바이벌’한 경쟁 때문이지요.
돼지는 하늘을 보지 못한답니다. 돼지해라 하여, 더 돼지 같은 삶을 살지 말고, 서바이벌(Survival)하지말고, 하늘 바라보며 리바이벌(Revival)한 삶을 살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야, 오늘 고통스러운 우리의 삶이 부활 전 고난주간이 될 것이며, 곧 맞이할 부활(리바이벌(Revival))의 기쁨을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