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문관에서 꽃이 되다’
최만희 지음
운주사 출판
304쪽, 1만원
‘괴각승(乖角僧)’이란 말이 있다. ‘엉덩이에 뿔난 소’처럼 괴팍한 승려를 일컫는 말이다. 불가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정진한 선사(禪師)들의 치열한 노력은 상식적 관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아 때로 괴각(성질이 비꼬임)으로 비치기도 했다.
어떤 선사는 대중 앞에 알몸을 드러내기도 했고 또 다른 선사는 불상을 깨버리기도 했으며 그들 모두는 육체의 고통을 초탈한 많은 기행을 통해 깨달음을 참구했다.
그 거침없는 선사들 중 ‘행동하는 양심이 부처’라고 설파했던 탄하 삼성선사(1941~2005)의 삶이 ‘무문관에서 꽃이 되다’라는 책으로 묶여나왔다.
“참회 없는 깨달음 없고, 실천 없는 깨달음은 휴지조각과 같다. 나는 이것을 실참실오(實參實悟)라 하고 ‘행동하는 양심’이라고 한다.”
종단 내외의 권력이나 구습, 위선에 천둥번개와 같이 거침없는 사자후를 하여 괴각승으로 불렸던 한 선사의 파란만장했던 삶이 편저자인 최만희 시인에 의해 망각의 늪으로 빠져버릴 위기에서 건져졌다.
이 책은 25년여 동안 삼성스님을 지켜보며 치열한 수행과 삶에 감화받은 지선 최만희 씨가 스님이 열반에 들자 회고록 원고, 일기, 수행기록 등을 정리해 펴낸 것이다.
‘이 뭣고?’ 화두를 든 불꽃수행
삼성스님은 충북 진천에서 가난한 집안의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그는 초등학교만을 졸업하고 농사를 짓던 중 잡지에 실린 부처님 일화를 듣고 3일 동안을 걸어서 속리산 법주사로 출가했다. 그의 나이 18세였다.
출가 후 못배운 한을 풀 듯 치열하게 공부했고 이후 조계종 종회의원과 몇몇 사찰의 주지를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이것이 무엇인가?(이 뭣고?)”라는 화두(話頭)를 들고 입적할 때까지 치열한 수행의 삶을 살았다.
그의 깨달음의 계기는 흔하디 흔한 병뚜껑이었다.
1979년(39세, 승랍21년) 공중전화 박스 밑에서 반짝이는 100원짜리 동전을 발견하고 누가 볼세라 얼른 줍고 보니 박카스병 뚜껑이었다. ‘스님이 돈에 눈이 멀었구먼’하고 병뚜껑이 마치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아 스스로가 가짜중, 위선자로 느껴져 견딜수 없었다고 술회했다.
그로인해 그는 53일 단식참회에 들어가 ‘양심이 곧 불성’임을 깨닫지만 몸은 심근경색으로 걸음도 제대로 걷지못하는 불구가 된다.
그러나 그는 기어다녀야 하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속리산 상환암에 올라 8년간 고행정진을 해 ‘마음이 부처’임을 거듭 깨닫는다.
이후 그는 법주사로 다시 내려와 두문불출 3년 결사 등 정진을 게속했으며 결국 대자암 무문관(좁은 방에 들어앉아 밖으로 문을 걸어채우고 모든 것과 단절된 채 오로지 깨달음에만 정진하는 곳)에 들어가 마지막 수행의 불꽃을 사르고 2005년 64세(법랍 46년)의 나이로 열반에 들었다.
“행동하는 양심이 부처다”
그는 ‘행동하는 양심이 부처’라는 깨달음을 실천하기 위해 한국불교와 부조리한 사회에 대해 거침없는 질타를 퍼부었다.
매불영업행위의 중단, 종권다툼 중단, 무당불교 타파 등 한국불교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쓴소리를 쏟아내 종단으로부터 곱지않은 시선을 받아야 했고 위선과 매불로 타락하는 종단에 깨달음을 주기 위해 법주산 팔상전의 불상을 깨뜨려 전과자로 몰리기도 했다. 종단의 고위 정치승, 주지나 조실 등 직책이나 계급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양심과 진실에 비추어 비판의 칼날을 여지없이 휘둘렀던 것이다.
이렇듯 치열한 구도의 길을 걸었던 삼성선사는 만행일기를 통해 구도의 마음자락을 세세히 펼쳐보이고 있다.
“행각이 두달이 넘게 지났다. 맨숭맨숭한 까까머리가 강렬한 햇빛을 받아 따갑고, 누더기는 땀으로 절어 무겁다. 등줄기에서 흘러내리는 땀냄새가 코를 찌른다.
가로수 그늘로 발길이 옮겨지고 있다. 삼복더위에 뜨거운 열기를 마시는 호흡. 이것이 중생열뇌(衆生熱惱, 중생들의 심한 괴로움)라면 손바닥만한 가로수 그늘은 피안이고 열반의 경지일까. 천안시장에 도착해 발우를 꺼내들고 아수라판 같은 소음 속에 억지로 사문의 고용한 품위를 세우며 시주를 구했다.
담겨있는 일원짜리, 십원짜리 동전들이 마치 눈동자처럼 내 마음을 뚫고 내 양심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삼수갑산에 갈망정 시원한 아이스크림 하나에 빵 몇 개를 사먹었다(만행일기 중)”
그의 깨달음에 대한 열정은 길거리에서, 선방에서 시종 치열하게 펼쳐졌고 중생제도의 보리심 역시 따뜻하게 발현된다.
그는 세상을 향해 “사람 되어 너도 나도 스스로 양심 있어 부처이거니, 이 푸른 하늘 날마다 좋은 날에 사람을 속이지 말라!”고 설파한다.
무상의 꽃 그려놓고 열반에 들다
탄하 삼성스님은 널리 알려진 선사가 아니다. 속리산 자락에 머물며 수행과 교화를 하다 이름없이 사라져간 스님이다.
그는 참선수행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무분관에 입관할 때도, 그곳에서 수행하다 열반에 들었을 때도, 종단 내외의 어느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했다.
세상에 올 때 환영받지 못한 것처럼, 갈 때도 거창한 다비식은 고사하고 일반 화장터에서 쇄골되어 조용히 자연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무문관 수행 중 한 송이 무상의 꽃을 그려놓고 열반에 든 한 선사의 치열했던 삶과 수행의 기록은 오늘 사바세계를 향해 조용하고도 깊은 깨달음의 미소를 던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