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은 참 기념일도 많습니다. 그 중에도 오늘을 사이에 두고 앞뒤에 있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은 자녀와 부모와의 관계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도록 합니다.
최근 한 멋있는(?) 아버지 이야기가 사회문제의 큰 화두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철저히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는지 몰라도 그 아들에게는 참 멋있는 아버지였겠구나 하는 생각도 해보긴 했습니다. ‘밖에서 맞고 들어온 아들을 사랑하여, 남자답게(?) 해결하는 아버지가 사회지도층 인사가 아니라, 평범한 소시민 이였으면, 나름대로는 멋있는 아버지였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물론, ‘노블리스 오블리제’라 하여, 지도층의 솔선수범과 특권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릅니다. 고귀한 신분일수록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뜻을 지닌,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 하는 공공정신이 오늘과 같은 다원화 사회에서 국민을 통합하고 국가적 위기 때에 국민의 역량을 극대화 할 수 있어서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으므로, 특별히, ‘재력’이 있는 재벌 아버지의 현명한 판단과 태도가 필요했음에도, 그렇지 못함이 최근 거론되는 내용의 배경일 것입니다.
물론 ‘부자’라면 괜히 더 미운 괘씸죄가 적용되어서 말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앞모습이 아니라,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하였습니다. 아침마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면서 아무리, ‘차 조심하고, 횡단보도 건너고’하며 강조하여도, 자녀 손잡고 길을 건너면서 “엄마랑은 괜찮아”하며 무단횡단을 한다면, 아이는 엄마의 설교보다 ‘이미 건너본 무단횡단’을 더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에드워드 머로우(Edword R. Murrow)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지요. “설득력이 있으려면 믿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 되려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진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제가 신부로 삶을 삽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기도하고 책을 읽고 훌륭한 설교를 하여도 제 신앙의 삶이 그 설교에 따라가지 못하면 신자들에게 외면당할 것입니다.
설득력이 있으려면, 그에 합당한 진실한 삶이 있어야지요. 밖에서 맞고 들어온 아들에게 남자답게 쫓아가 때려 주며, “아빠는 괜찮아” 해놓고는, 아들에게 ‘넉넉함과 용서’, ‘남자답게 사람들을 이끌 리더십’을 가르쳐 주기란 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삶의 모상’을 남겨주는 것이니까요.
어린이날이 어버이날보다 앞서 있는 것은 먼저 어린이날에 ‘부모’가 자녀에게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고, 어버이날에 ‘자녀’가 부모를 따라 배우는 ‘사랑의 모방’을 위해 그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개그맨들이 이런 말을 한답니다. “우리는 웃기는 사람이 되어야지, 우스운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부모는 자녀에게 우스운 사람이 되지 않도록, 힘을 가진 성숙한 어른으로서 자녀에게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삶의 어려움과 고통을 견디어 가야하는지, ‘삶의 모델’이 되어야겠습니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크기도 하지만, ‘보고 자란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