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의 세계 美術’
도병훈 지음
글을읽다/344쪽, 2만원
생을 통틀어 단 한 번만이라도 미술품 앞에서 전율을 느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오늘도 수많은 곳에서 미술전시회가 열리지만 감상자와 소통되는 그림은 또한 얼마나 될까?
초등학교 시절 흰 도화지 위에서는 감흥을 만들었던 미술이 왜 어른이 돼서는 어렵고 낯설기만 한 무엇이 돼버릴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대미술에 대해 ‘보통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특수한 영역’으로 인식하면서 막연한 환상을 갖거나 아예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 미술에 대한 통념은 ‘솜씨 있는 그림 기술’이거나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관념덩어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미술과 대중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현직 고등학교 미술교사이자 화가인 도병훈씨가 미술의 미학적 흐름을 정리한 교양서를 내놨다.
이 책은 미술 이해를 위한 종합선물세트다. 서양미술사조와 그 기저에 흐르는 도저한 정신세계를 추적하는가 하면 동양미술의 화론(畵論)과 노장사상, 불교의 선사상 등이 미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밝히고 있다. 또한 동서와 고금을 넘나들며 대가들의 작품세계를 논하는 한편 한국미술계 및 예술교육의 문제점, 당대에 활동하고 있는 미술가와 작품에 대해서도 훌륭한 안내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저자가 너무 많은 주제를 책 한 권에 담아내려다 보니 다소 산만한 느낌이 없지 않다. 또 책을 통해 소개되는 화가들도 고르게 안배되어 있지 못하다. 이 점이 책의 완성도를 떨어뜨리긴 하지만 시각의 참신성과 미술이해를 위한 안내서로는 손색이 없다.
저자는 수많은 철학이론서와 예술서를 참고해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서도 깊이를 잃지 않는 글을 보여준다. 특히 현대미술의 의미에 대해 주목한다.
그는 현대미술이 “느낌의 대상이면서도 철학적 사유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현대미술은 창작과 미술품을 체험하는 감상활동이라는 두 축으로 형성되며 창작과정 못지않게 감상활동도 능동적인 행위라는 것. 이와 같은 의미에서 “현대미술의 감상은 어떠한 섣부른 판단도 유보하면서 그 만남의 접점 속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현대미술의 난해성과 관련해서는 비평의 역할을 강조한다. 현대미술의 가치는 예술작품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술과 비평 사이에 있으며 난해함을 해석하는 비평의 역할과 위상은 어떤 의미에서 예술작품이라는 단서보다 더 강력한 힘을 지닌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꿈만큼 해몽이 중요’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저자는 비평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한국의 미술비평계의 문제를 지적한다.
한국 미술비평계가 미술과 미술비평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의 비평계는 막대한 예산을 낭비하는 소모적 행사에 지나지 않는 대규모 기획전의 기획자로서, 아니면 도록 서문이나 미술잡지에서 의뢰한 전시리뷰나 쓰면서 특정작가 스타만들기에 치중해 왔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들이 미술문화에 기여하기보다 오히려 미술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꼬집는다.
이 책은 미학적, 미술사적 다양한 관점을 보여주며 대중과 미술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예술적 소통의 길라잡이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현대미술이 주류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며 삶의 진정성을 찾기 위한 ‘탈주’의 표현방식이라면, 그 난해성을 극복하고 예술적 소통에 이르기 위한 감상자들의 노력도 유의미한 생산적 행위가 될 것이다. 무릇,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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