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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新 랜드마크] 8. 용인 민속촌

조선시대의 모습 그대로 간직한 팔달문(八達門), 화성의 북문이자 정문인 장안문(長安門)의 화성을 생각하면 수원이 생각납니다.

 

파리의 에펠탑처럼 어떤 도시를 생각하면 연상되는 상징물이나, 기준점이 되는 건물을 우리는 랜드마크(Land-Mark)’라고 부릅니다.

 

이처럼 도심 표지판 역할을 하는 시각적인 랜드마크도 있지만 감성적· 서정적 랜드마크도 있습니다.
본지는 삶의 만족을 찾으려는 ‘다운시프트(Downshifts)족’의 등장과 관광과 문화 등 무형의 경험을 중시하는 새로운 관광 소비자층인 ‘노블레스 노마드(Noblesse Nomad)’ 를 경기도로 끌어 들이기 위해 ‘경기도 新 랜드마크’를 설정, 기획 취재했습니다.

 

여행전문가로 알려진 이용환 소설가, 이재웅 시인의 맛깔나는 글, 취재기자의 현장탐방, 그리고 뉴 미디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앵글의 사진으로 ‘경기도 新 랜드마크’ 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1. 평화ㆍ통일의 전초기지 ‘도라산역’
2. 안성 바우덕이축제 (무형 랜드마크) 
3. 수원 화성 (세계 유산 역사 랜드마크)
4. 파주 헤이리예술마을 (민간문화 랜드마크) 
5. 화성 제부도 (생태체험 해상 랜드마크)
6. 파주 영어마을 (체험 학습 랜드마크) 
7. 양평 두물머리 (자연 랜드마크)
8. 용인 한국민속촌 (관광 랜드마크)

 

 

내가 용인 민속촌 안의 옹기 생활관을 찾아갔을 때, 나는 옹기들이 그토록 다양한 형태로 빚어지며, 또 그것에 걸맞게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진다는 것에 조금 놀랐다. 그리고 내가 그만큼 옹기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알았다.

돌이켜보니, 그랬다.

나는 이제껏 도자기류에 관련한 것들은 많이 접해왔다. 방송, 잡지, 신문 등등. 심지어는 학창시절에는 교과서를 보며 이것은 고려시대 무슨 도자기, 이것은 조선시대 무슨 도자기하고 암기까지 했었다.

그러다가 이제 옹기라는 또 다른 그릇의 세계를 접한 것이다. 옹기는 나에게 대체로 항아리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관한 정보라고는 서양그릇이나, 플라스틱, 유리그릇과는 달리 숨을 쉰다는 것이었다. 나의 옹기에 대한 상식은 그만큼이나 빈약했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들 대부분은 도자기 그릇에 식사를 하고, 곡물을 담고, 양념을 담았나? 돌이켜보니 그것은 아니었다.

 

 

우리 조상들 대부분은 아마도 귀떼기기름병, 오지밥통, 조왕그릇(옹기 생활관에서 처음 알았다)을 이용했을 것이다. 무늬도 복잡하고 그만큼이나 이름도 복잡한 무슨무슨 청자니, 혹은 무슨무슨 백자니 하는 것들은 언감생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는 이순신은 알아도 그 밑에서 활을 쏘다 죽어간 사람은 모른다. 우리는 거북선은 알아도 누가 그 배를 저었는지는 모른다.

 

그들의 이름은 그저 병사 아니면 포졸이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역사라는 것은, 그리고 조상의 숨결이라는 것은 그렇게 이순신을 앞세우고, 도자기와 거북선을 타고 우리에게 온다. 결코 귀떼기기름병이나 오지밥통을 타고 오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귀떼기 기름병이나 오지밥통을 타고 오는 역사는 사라져도 좋단 말인가? 그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에게는 용인의 한국민속촌이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마도 용인 민속촌을 돌면서 이런 생각을 한 듯 하다. 그래서였는지 모른다. 내가 연자방아를 돌아 남부와 북부, 그리고 중부지방의 민가를 돌았을 때, 제주도 민가와 짚신공방을 지나 물레방아에 접어들었을 때, 내가 느꼈던 것은 경복궁을 거닐 때와는 또 다른 색채의 위안과 여유였다. 일테면 그것은 친근하고 낯익은 위안과 여유였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승마체험장의 옆의 원형 공연장에서 농악패와 줄타기 등의 공연들이 있을 때, 너는 공연자 나는 관객이라는 구분을 넘어, 마치 이웃집 아저씨가 공연하는 것을 지켜보는 듯한 기분 속에서 그것들을 지켜볼 수 있었다.

 

사실, 농악패와 줄타기의 공연이 그렇게 화려하지 않은 면도 있었다. 관객 수도 적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오히려 민속촌답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TV에서, 또 영화에서 또 이런 저런 행사에서 보여지는 화려한 전통놀이는 우리와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 것인가? 그래서였는지 모른다.

 

두 명의 여성이 널뛰기 묘기를 선보였을 때, 나는 찬탄을 하면서도 어쩐지 서커스를 보는 듯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것은 고요하고 나지막한 조선의 풍경에서 무척이나 날카롭고 수직적인 풍경이었다. 아마 경복궁이나 다른 장소였다면 조금 달랐을 것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홍예교 건너의 장터였다. 그 곳에는 수많은 공방과 음식점이 있었다. 말 그대로 저자거리였다. 그리고 저자 거리답게 추운 날씨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산다, 사진을 찍는다, 음식을 먹는다 하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도 객주집에 들러 장국밥 한 그릇을 먹었다.

 

조선시대의 건물 안에서의 식사 때문인지, 아니면 종업원들의 조선식 복장차림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북적거리는 사람들 안에서 장국밥을 먹는 것이 어쩐지 잠시 조선시대에 들러 국밥 한그릇을 먹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유쾌하면서도 즐거운 것이었다. 나도 아마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장돌뱅이이거나 나무짐을 지는 나무짐꾼이거나 아니면 농사짓는 평민이거나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객주집에 들러 국밥을 먹고 술을 마셨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용인의 민속촌은 조선이라는 테마로 지어진 거대한 공원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잠시 현대인이라는 것을 잊고, 친근한 과거 속에서 또 다른 신분을 꿈꾸어볼 수 있는 공간이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어떤 면에서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역사적 의의보다도 더 큰 매력일지도 모른다. 또,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에게 준 선물일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민속촌처럼 우리의 시간을 몇 백 년 전으로, 그것도 삶이라는 것과 밀착된 감각 속에서 되돌릴 수 있는 곳이 몇 군데나 될까? 나는 마지막으로 양반가와 관아를 거쳐 민속촌을 빠져나왔다.

하늘에서는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고, 내 옆으로는 일본인들로 보이는 관광객들이 자신들만의 언어로 웃고 이야기하며 민속촌 주변의 상가로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조선의 한 귀퉁이를 살짝 돌아 나온 기분이었다. ■ 글=이재웅 작가 ■ 사진=장문기기자

 

연 평균 방문객 180만명 세계적인 관광명소 자리매김
조선시대 지방별 전통가옥·생활도구 등 문화유산 전시

한국민속촌은 연간 평균 약180만명의 국·내외 관광객들이 365일 찾아오는 세계적인 관광명소다. 외국인 관광객은 그중 350여명에 이른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이 확산되면서 주택 개량 사업 등이 진행되자 전통가옥을 보존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와함께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정부의 관광사업 진흥정책이 전개되면서 문화계 종사자들의 움직임과 정부 정책에 힘입어 조성된 곳이 한국민속촌이다. 정부는 민자유치를 통해 민속촌 건립 사업계획을 승인, 1973년 조원관광진흥(주) 한국민속촌은 ‘한국민속촌’을 설립했다.
조원관광진흥(주) 한국민속촌은 1973년 8월 5일 경기도 용인군(시) 기흥읍 보라리 107번지 일대 66만600㎡ 부지 에 30여 가구 규모로 민속촌 건립을 시작했다. 이듬해 10월 3일 제 1차 사업을 준공, 일반에게 개관했다.

 

   
   
이후 부지와 시설물을 확장하고 보완 공사를 연차적으로 시행해 현재 108만9천㎡에 조성된 한국민속촌에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우리 민족의 생활양식을 총체적으로 볼 수 있는 민속자료 및 민족문화유산이 전시돼 있다.
전시면적은 66만600㎡ 정도로 이는 우리나라 민속을 집대성한 전시장 중 최대 규모다.
주요시설로는 전시가옥 270여동, 전통공예품 공방, 전통생활도구, 민속관, 도깨비집, 영상관, 미술관, 세계 민속관, 공연장, 유스호스텔, 편의시설 등이 자리하고 있다.

 

전시지역에는 조선시대 후기의 남부, 중부, 북부, 도서 지역 등으로 지방별 전통가옥 약 270채를 이전, 복원했다. 전통생활도구는 약 1만6천여점이 전시돼 있으며, 그 안에는 교육·행정·생업·공예·신앙·의례·연희오락 등 우리 조상들의 삶을 읽을 수 있는 귀중한 유·무형의 자산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민속촌 안에는 공방도 20여개가 있어 도자기, 키, 바구니, 목기, 한지, 유기, 자수, 매듭, 철제도구 등을 생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옛장터에서는 각 지방의 전통적인 음식을 맛볼 수가 있고, 상가에서는 각 지방의 토산,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다. 또 공연장에서는 하루에 두 차례씩 농악, 널뛰기, 외줄타기 등을 공연한다. 봄, 가을과 명절에는 우리나라 명절의 분위기와 세시풍속, 관혼상제 등을 재현하고 있다.
전통혼례도 실제 거행한다. 하루 두 차례 정오, 오후 4시에 전통혼례를 보여주거나 실제 혼례를 치른다.  이밖에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전통생활체험도 할 수 있도록 변모되고 있다. 특히 야외에서 보고, 듣고, 배우기 어려운 민속과 사계절 민족문화의 정수를 익히고 싶다면 민속관과 박물관, 미술관, 세계 민속관에서 보고 배울 수 있다.

 

민속촌의 관람시간은 통상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하지만 계절의 변화에 따라 신축적으로 조정, 운영된다.
그러나 한국민속촌의 경우 IMF 이후 관광객수가 증가 되지 않고 있다. 
관광가치는 높지만 교통편이 불편해 방문하기 어렵다는 점과, 최근에는 타지역에서도 볼거리가 다양화되고 있다는 점 등이 민속촌의 관광객수가 증가되지 못하는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최근 지자체 등에서도 행사를 많이 개최하고 볼거리가 점차 다양화되다보니 국내 관광객이 증가되지 않고, 한류의 영향으로 외국인 관광객은 늘고 있지만 교통편이 불편해 민속촌에는 외국인 관광객 수도 증가세로 올라서지 못하고 있는 것.

 

수원역 앞에서 무료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지만, 외국인의 경우는 서울에서 출발하는 관광객들이 많다. 이 때문에 최근 여행사에서는 관광코스에서 한국민속촌을 점차 제외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한 개선책으로, 조원관광진흥(주) 한국민속촌은 동탄 제2신도시 조성으로 지하철이 연계되면 인근에 지하철역을 유치한다는 계획을 세워 경기도와 이를 협의 중이다. 

 

또 향후 민속촌을 한국형 테마파크로 조성, 관광영역·체험영역·전통문화영역·현대문화영역 등으로 개발해 기존의 모습을 보존하면서도 민속촌 안에서 전통·역사·문화·교육·자연·레저가 함축된 곳으로 개발, 관광객을 더욱 유치한다는 한다는 계획이다. /최지현기자 cjh@

 

 

-랜드마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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