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자금이 돌지 않아 기업체들이 영업이익을 내고도 파산하는 이른바 흑자도산이 우려된다.
대한상공회의소는 4일 ‘최근 시중자금 흐름의 특징과 개선방안’ 보고서를 통해 “올해 1~9월 중 코스피(KOSPI) 12월 결산법인 629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손익계산서상에 영업이익을 내고도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오히려 마이너스를 기록한 기업이 34.8%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 때(23.1%)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영업활동 현금흐름이란 영업활동으로 인한 자산부채의 변동을 가감해 계산되며 이 수치가 플러스면 현금자산이 많아져 재무구조 개선 등에 사용할 수 있는 여유자금이 많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대한상의는 “기업의 현금흐름이 크게 악화된 데는 최근 경기하강에 따른 수요둔화로 재고가 늘거나 실제로 물건은 팔렸더라도 자금시장 경색으로 인해 외상판매 증가나 대금회수가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영업활동 현금흐름을 매출액으로 나눈 ‘영업활동 현금흐름 비율’은 지난 2004년 12.6%를 정점으로 계속 하락세를 보이다가 올해 1.6%에 그쳤다. 또 돈의 시중흐름을 보여주는 통화유통속도도 점점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명목 GDP(국내총생산)를 광의통화(M2)로 나눈 ‘통화유통속도’는 올해 2분기가 0.720, 3분기에 0.703을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의 0.763과 0.752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유통속도는 통화 한 단위가 일정 기간 동안 각종 거래를 위해 몇 번 유통되었는지를 나타내주는 지표인데 이것이 떨어졌다는 것은 돈의 흐름이 어딘가에 막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대한상의는 “자금조달 비용이 늘면서 기업의 수익성 감소가 우려된다”면서 “한국은행이 10~11월 세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1.25%포인트 내렸지만 회사채금리는 11월 말 기준 10월 초보다 오히려 1.16%포인트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2000년 9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시중의 돈이 실물부문으로 제대로 유입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보고서는 “시중자금이 실물부문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을 경우 영업이익을 내고도 파산하는 이른바 ‘흑자도산’하는 업체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지난 96년부터 99년까지 도산을 한 기업 가운데 영업이익을 내고도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마이너스인 기업이 절반이상을 차지했다.
대한상의는 “현재 시급한 과제는 실물경제의 혈액 역할을 하는 돈이 흐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은행에 대한 유동성 공급 확대와 우선주 매입 등 자본확충 지원, 신보·기보 보증규모 확대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