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영배란 이름의 술잔이 있다. 베이징 6자회담에 그 이름이 등장하여, 현대인의 관심을 받게 된 술잔이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베이징회담에서 과다한 요구를 제시하는 북한 측에게 지나친 욕심을 버리라고 설득하면서 술잔을 비유해서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고 한다.
이 때 비유에 사용되었던 술잔의 이름이 계영배(戒盈杯)이다. 경계할 경(戒), 찰 영(盈), 잔 배(杯). 꽉 차는 것을 경계하는 술잔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계영배는 사이펀의 원리를 이용하여 잔의 70% 이상 술이 차면 술이 잔의 밑 부분으로 옮겨지도록 만든 잔으로, 절주배(節酒杯)라고도 한다.
계영배는 고대 중국에서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하늘에 정성을 드리며 비밀리에 만들어졌던 '의기'(儀器)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중국 고대문헌에 의하면 공자(孔子)가 제(齊)나라 환공(桓公)의 사당을 찾았을 때, 생전의 환공이 늘 곁에 두고 보면서 스스로의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사용했던 '의기'를 보았다고 한다.
이 의기에는 밑에 구멍이 분명히 뚫려 있는데도 물이나 술을 어느 정도 부어도 전혀 새지 않다가 7할 이상 채우게 되면 밑구멍으로 새어나가게 되어 있었다고 한다.
환공은 이를 늘 곁에 두고 보는 그릇이라 하여 '유좌지기'(宥坐之器)라 불렀고, 공자도 이를 본받아 항상 곁에 두고 스스로를 가다듬으며 과욕과 지나침을 경계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실학자 하백원(1781∼1844)과 도공 우명옥이 계영배를 만들었다고 전한다. 하백원은 전라남도 화순 지방에서 태어나 20세까지 학문을 배우고 23세부터 53세까지 30여 년간 실학 연구에 몸을 바친 과학자이며 실학자였다.
도공 우명옥은 조선시대 왕실의 진상품을 만들던 경기도 광주분원에서 스승에게 열심히 배우고 익혀 마침내 스승도 이루지 못한 설백자기(雪白磁器)를 만들어 명성을 얻은 인물로 전해진다.
유명해진 우명옥은 친구들의 유혹으로 방탕한 생활에 빠져 들어 재물을 모두 탕진한 뒤, 잘못을 뉘우치고 스승에게 돌아와 계영배를 만들어 스승에게 받쳤다고 한다. 그 후 이 술잔을 조선시대의 거상 임상옥(林尙沃: 1779∼1855)이 소유하게 되었는데, 그는 계영배를 늘 옆에 두고 끝없이 솟구치는 과욕을 다스리면서 큰 재산을 모았다고 한다.
계영배는 너무 지나치면 모든 것을 잃는 것과 같이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하여 자신의 능력이나 상황에 적당한 바람을 가질 줄 아는 안분자족(安分自足)의 지혜가 담긴 교훈적인 술잔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고사성어는 인생사 고비마다 과욕을 경계하고 성찰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생활의 지혜이다. 계영배가 주는 교훈과 일치한다. 현대인들은 과거에 비해 여러 측면에서 풍족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면 과연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보다 더 많은 행복감을 느끼고 있을까? 연구 자료에 의하면 경제적 물질적으로 풍요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보다 그러하지 못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더 높다고 한다.
경제적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인도가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라는 사실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지나친 풍족함으로 인해 오히려 행복감을 더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도가 지나쳐 느껴야 되는 행복감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그로 인해 느끼는 만족감은 5년, 결혼으로 인한 행복감은 2년 정도 유지되고 소멸된다고 한다. 아무리 많은 것이 주어진다 해도 그로 인해 느끼는 심리적 만족은 시간적 한계를 갖게 된다.
인생은 저 세상으로부터 왔다가 저 세상으로 떠난다. 사는 동안 엄청난 재산을 모으는 사람도 많고, 더 없이 화려한 명예와 막강한 권력을 얻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그들은 재산과 명예와 권력과 함께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이 세상에 올 때와 마찬가지로 빈손으로 모두 이 세상을 떠나갔다. 단지 자그마한 표식만을 남기 놓고서 표표히 떠나갔다.
누구나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인생길, 너무 많은 걸 손에 쥐고 있으면 마지막에 놓고 갈 때도 그만큼 더 힘이 든다는 말이 있다.
잠시 자신이 살아 온 발자취도 돌아보고, 또 나와 같이 살아가는 옆 사람도 살펴보고, 그리고 아주 가끔은 내가 살아가는 하늘도 바라보면서 살아간다면 그게 바로 행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