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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특집] 볼모지서 일군 ‘역도 강국’의 꿈

‘역도 헌신’45세 타계 후 국가발전 공로 맹호장 추서
공산권 개최 세계주니어선수권 참가 역도부흥 초석
캐나다 등 40여 차례 해외대회 참여 국위선양 기여

한국 역도 발전 숨은 공로자 ‘ 故 장희영’

고양시는 뉴스위크지에서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세계 10대도시에 이어 세계가 주목할 만한 또 하나의 스포츠 대축제를 앞두고 전 세계인은 물론 지구촌의 주목을 받고 있다.국제역도연맹(lWF)이 주최하고 고양시와 대한역도연맹이 주관해 오는 20일부터 29일까지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리는 ‘2009고양세계역도선수권대회’는 전세계 100여 개국, 1천여 명의 선수단이 참가, 지구촌 최고 역사의 자리를 놓고 겨루는 가슴 벅찬 환희와 감동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이번 대회는 올림픽 다음으로 규모가 큰 대회로 이른바 ‘역도 올림픽’으로 불릴 만큼,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대회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역도가 오늘날까지 이렇게 발전하기까지의 기틀을 마련한데 기여했던 공로자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편집자주>

 

고 장희영, 그는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고 장희영 그는 체육계 종사 20여 년간 오직 역도와 체육계의 발전을 위해 분골쇄신하다 1981년 12월 19일, 45세의 짧은 나이로 세상을 타계한 인물로 그가 남긴 우리나라 역도 발전에 기여한 공과 역도사랑은 눈물겹다.

그는 1962년 대한체육관 역도부 사범으로 첫발을 내딪는 이후 1965면 마포역도관 관장, 67년 대한역도연맹 간사 피선, 68년 역도 국제심판 자격취득(세계역도연맹), 69년 제4회 한·일 친선 역도대회 무주 참관(동경), 71년 제1회 아사아 역도 선수권대회(필리핀)코치 참가, 72년 대한역도연맹 전무이사, 74년 제7회 아시아 경기대회(이란)역도 국제심판 참가, 76년 제2회 세계주니어 역도선수권대회(폴란드)단장 참가등 캐나다, 불가리아, 미국, 헝가리, 싱가폴, 이집트, 프랑스 등 40여 차례나 해외를 넘나들며 역도 관련 행사 및 각종 대회에 참가하며 한국역도의 중흥과 국위선양을 위해 기여한 인물로 알려졌다.

그는 특히 1976년 공산권 폴란드에서 개최된 제2회 세계 주니어 역도 선수권대회 참가를 위해 세계역도연맹 회장단 및 간부, 회원국들과의 적극적인 섭외 활동을 통해 태극기를 앞세우고 무난히 참가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하는 한편 세계 속에 한국의 힘을 펼 수 있도록 거점을 확보했던 인물로 알려졌다.

고 장희영 씨 부인 이순자(64, 한국체육산업(주) 대표이사)씨는 남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뜨자 당시 37세의 젊은 나이로 남편이 운영하던 역도 관련 및 체육기구를 만드는 사업을 계승, 세상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자부심과 보람으로 운영하고 있다.

특히 우리 손으로 만든 기구인 파크로(태양광을 이용, 밤에도 전기 없이 조명 역할을 하는 기구)야외용 헬스기구, 농구대가 세계시장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고양시 향동동의 공장에서 주문방식으로 기계와 수작업을 통해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대표는 “1970년대 우리나라는 근대화, 산업화 물결이 불기 시작했으나, 체육회의 사정은 굉장히 취약했으며 특히 비인기 종목인 역도는 더욱 그러하여 지원이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의 역도 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며 “재정지원이 미약한 상태에서도 남편은 각종 해외 역도대회 참가를 위해 때로는 사재를 털어 선수단을 이끌고 해외에 나가 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루었으며 그 때의 동메달은 지금의 금메달 보다 값진 것이었다”고 말했다.

또 “당시는 외교적으로 불모지난 다름없던 동유럽권과 소련을 넘나들며 남편은 역도스포츠 외교를 통해 공산국가의 체육부장관 IOC위원들과 1970년대부터 친분을 쌓기 시작했던 영향 등이 88년 일본 나고야를 제치고 올림픽을 유치하는데 상당부분 기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광도 잠깐, 남편은 공산국가를 넘나들며 보이지 않은 스트레스, 과도한 업무일정 등으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과 그가 그토록 열정을 쏟았던 역도를 뒤안길에 묻고, 세상을 타계했다.

남편이 갑작스런 사망소식에 세계역도연맹 회장 등 관계자, 공산국가 역도관계자, 특히 국제역도연맹(lWF) 타마스 아얀 사무총장(헝가리)은 전문을 보내 그의 사망을 애도했고 일부 역도 관계자들은 이후 한국을 찾아 그가 잠든 묘소까지 참배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정부는 남편의 공로를 인정, 국가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체육훈장 맹호장을 가족에게 수여했고, 이 대표 역시 1994년 4월, 제6회 아시아여자역도 선수권대회 단장으로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 체육훈장 기린장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큰아들(현 장승환 부사장)과 14살과 둘째딸 10살, 막내딸 7살을 두고 살아갈 앞날을 생각하니 역도만큼이나 무거운 쇄 덩어리가 억깨를 누르는 것처럼, 너무나 막막해 아이들과 함께 모두 남편을 따라 가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으나 그 때마다 남편이 기여한 공에 누가 될까봐 주위의 체육계 분들의 고마운 도움과 신앙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에 도전, 역경을 딪고 오늘까지 왔다”며 당시를 회상, 눈시울을 적셨다.

이 대표는 “이제는 고 장희영 이라는 이름이 잊혀져가고 있지만 세계역도선수권대회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되고 있는 이 때 만이라도 남편의 이름이 역도관계자와 국민들에게 기억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아쉽다”며 “남편 이름이 한 민족 대백과 인물사전에도 오를 정도로 그 공로가 인정된 만큼, 자식들과 주변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물론 한 때는 평생을 역도와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자신과 가족도 돌아보지 않고 열정과 애국심으로 나라를 위해 역도를 사랑한 남편이 그토록 미웠지만 이제는 남편의 생각을 모두 존중하며 이 대표 자신 또한 역도 발전을 위해 서울시 역도연맹 부회장직을 20년간 헌신 봉사하고 있으며 오직 대한민국 역도 및 체육발전을 위해 이 유업을 내 아들 후대에 까지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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