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비롯한 우리 가족 모두는 소유 경주마가 좋은 성적을 내기보다 그저 다치지 않고 뛰어주는 것을 최우선에 두지요”
마주경력 17년째인 이수홍 마주(80)는 마주세계에선 애마가로 통한다.
매주 주말이면 꼬박꼬박 서울경마공원을 찾아 경주를 관람하고 마방을 찾는 그의 손엔 사과와 당근, 각설탕 등 말의 간식이 들려있다.
때론 부인과 자녀, 손자 대가족이 나들이코스로 경마공원을 찾기도 한다.
간식은 소유마필 13두가 아니라도 딴 말에게 먹이려 푸짐히 싸간다.
이런 정성을 아는 지 ‘백광’ 등 마필은 수십 미터 전방에서 이들 가족 발소리를 듣고 즐거운 울음으로 화답한다고 했다.
“말은 예로부터 우리 기마민족의 중요한 동반자로서 전쟁과 신화뿐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로 귀중한 존재”라고 말하는 그의 말과의 첫 만남은 마주로 발을 디딘 1992년부터 시작해 그 끈은 지금까지 끊어지지 않고 있다.
특정 경주마와의 각별한 인연은 ‘그레이크레스트’ 가문을 들었다.
지난 2002년 경주마 경매에서 당시 체중 400㎏의 왜소한 체구로 관심을 끌지 못했던 ‘그레이크레스트’의 자마 ‘소백수’를 구입한 것이 계기였다.
그 후 ‘소백수’의 동생 ‘백광’, ‘백파’를 비롯, 그들 가족인 ‘백락고’와 ‘소백령’과 함께 희로애락을 같이 하고 있다. 그중 ‘백광’은 좀 더 유별나다. 작년 다리부상으로 경주마 운명을 가늠키 어려운 지경에 빠졌으나 줄기세포로 기적처럼 재기한 ‘백광’은 이수홍 마주에게 아픔과 기쁨을 동시에 안긴 주인공이다.
“백광이 아플 때는 내가 아픈 것처럼 마음이 아팠으나 회복된 모습을 보고 그저 고맙기만 했습니다. 새삼 말을 통해 사람이 얻는 기쁨이 크다는 것을 느꼈죠. 백광을 계기로 경주마들이 부상 때문에 주로에서 사라지고 도태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마주 입장에서만 본다면 소유 마필이 높은 승률로 수익을 올리는 것이 당연한 목표이나 그는 아프지 않고 마음껏 뛰다 늙어 은퇴하는 것이 말의 행복한 삶이라는 논리를 폈다.
이수홍 마주는 “경마는 오락이 아닌 사람과 동물이 함께 연출하는 도락(道樂)”이라며 “경마를 단순히 도박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배팅은 경마를 즐기는 하나의 놀이수단으로 여겨 건전한 레저로 즐겼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표명했다.
산수(傘壽)의 나이에도 전주 이씨 효령대군파 종회 이사장과 문화시민운동중앙협의회 회장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는 그는 '백광'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통해 건전한 경마문화를 조성할 계획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