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처럼 레저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시절, 조상들은 각종 놀이를 통해 힘든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해방된 공간에서 흥에 취했다. 너와 내가 아닌 우리라는 공동체 속에 즐거움과 흥겨움이 배어난 놀이는 민초들이 팍팍한 삶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안식처이기도 했다. 멀리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현재까지 단절과 복원을 반복하며 맥을 이어온 각종 놀이들은 오늘날 전통문화라 부르며 후손에 길이 물려주어야할 유산으로 소중히 여기고 있다.
경기도 과천 전통놀이 중엔 무동답교놀이가 있다. 따로 독립된 무동과 답교놀이가 하나로 합친 특이한 행태를 띤 무동답교놀이는 정조 능행 시 시작되었다는 전설이 백성들의 입으로 전해져 이제 전설처럼 굳어졌다. 지난 25일 청계초등학교 누리강당에선 전통놀이에 대한 전수자를 지정하기 위한 시연회가 열렸다. 1년에 한두 번 대중에게 공개되는 소중한 기회를 놓칠세라 기자는 그 현장을 찾아갔다. <편집자 주>
얼쑤~ 전통 무동답교놀이 맥 잇는다
“가락이 빨라져요. 긴장하지 말고 그냥 하던 대로 하세요”
본 시연에 앞서 호흡을 맞춰본 길라잡이 오은명은 놀이패에게 평상시대로 할 것을 주문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농기를 앞세운 풍물패는 상쇠의 손에 들린 꽹과리의 청아한 소리에 징과 북, 장구, 호적 등으로 화답하는 등 짧은 인사 굿을 치르곤 심사위원들에게 시작을 알리는 예의를 표했다.
심사위원들 뒤로는 놀이패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정조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조선왕조 22대 임금인 정조는 부친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했고 재위 13년 되던 해 배봉산 사도세자의 묘(영우원)을 오래 전 점찍어 두었던 수원 화산(華山)으로 천장(遷葬)하고 ‘현륭원’이라 칭했다. 이후 정조는 한양과 수원의 긴 행차를 귀찮다않고 매년 능행거동을 했다. 구불구불 남태령 고개를 넘어 동네 어귀에 도착할 즈음 과천백성들은 무동답교놀이로 효행을 찬양하고 환송했다.
인사굿에 이어 당나무 앞에서 삼배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비는 당고사로 이어간 풍물패는 다시 한 번 강당을 휘몰아치며 숨넘어가는 자진가락과 느린 가락을 반복하며 신명난 잔치마당을 질펀하게 펼쳤다. 일순 끊어졌다 다시 이어지는 농악은 집채만 한 파도가 바위를 거세게 때리는 것처럼 우렁차나 조화로운 음률은 오케스트라 연주를 보는 듯 한 착각에 빠뜨리게 한다.
“나 너 니나노 에~에허에허 에헤야아 에~어허어 어허 허루 산이구나. 과천 관악산 염불암은 연주대요, 도봉 불성 삼막으로 돌아든다.
삼박자 장단에 맞춰 울려 퍼지는 선소리는 흥을 한층 돋우고 극이나 춤, 재담을 하는 잡색과 집사, 촌장, 도령 등은 제멋에 겹고 어른 어깨위에 올라선 무동도 덩실덩실 춤춘다.
마을에 가뭄이 들지 않게 소원하는 우물고사와 자신의 다리가 무병하기를 바랐던 답교의 절차를 거쳐 넓은 마당에서 ‘오방진 감기’, ‘사통백이’, ‘좌우치기’ 등 마당놀이에 접어들 즈음 그때까지 장죽을 물고 점잔빼며 수염만 쓸어내리던 양반 어른신도 종내 못 참겠다며 놀이패에 끼어든다.
그러나 양반체통을 생각해서인지 느릿느릿 걷거나 거드름을 피우다 왜장녀를 만나면 태도가 180도 달라진다.
왜장녀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맞춤을 추거나 엉덩이를 씰룩거려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모든 순서가 막바지에 이를 즈음 술항아리를 머리에 인 아낙은 뒤풀이로 놀이패와 구경꾼을 돌며 술 한 잔을 권한다.
튀김과자를 안주삼아 한 사발 들이킨 기자도 알싸하게 취기가 돈다.
조선시대 서민들의 애환을 달랬던 무동답교놀이는 타 지방 민속놀이가 그러했듯 일제 강점기에 중단되었다.
민속학자 심우송씨의 복원과 이듬해인 1982년 전국민족예술경연대회에서 과천노인들에 의해 재연돼 기억 속 저편 한구석에 잠자던 무동답교놀이는 70여년 만에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인 남사당놀이 준 기능보유자이자 전수조교인 지운하 선생과 한뫼과천국악예술단 오은명 단장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재작년 1월 경기도무형문화재 제44호로 지정돼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날 시연회는 상쇠와 호적, 선소리 전수자 지정을 위한 자리로 무동답교놀이로선 또 한 번의 전기를 맞는 셈이었다.
전통문화의 공인 전수자는 후대 전승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로 무형문화재 지정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과천무동답교놀이패들은 소중한 문화유산이 지역민들의 무관심으로 점차 소멸돼가는 위기 속에서도 애오라지 전통놀이를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
40분간 진행된 시연회가 막을 내리면서 문득 지운하 선생이 연전(年前) 인터뷰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우리 것을 등한시하는 풍조가 사라지지 않는 한 선대들의 가락과 무용, 국악은 언젠가는 이 땅에서 사라질 겁니다. 또 민속놀이의 맥이 단절되지 않고 전승되려면 기능보유자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기능보유자 한명 없는 전통놀이는 속빈 강정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