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은 개화파인 부친의 영향을 받아 청나라로부터 완전독립 위해 일본세력과도 병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했지만 성장하며 청나라, 일본 등 외세의 본질을 깨우치고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국권침탈이 가속화됨을 목격하고 국권찾기에 골몰했다”
소설가 이문열(사진)씨는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지난 20일 성남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분당포럼 초청 강연회에서 이같이 밝히면서 안중근 의사의 강렬한 애국 의지를 다시 한 번 높게 평가했다.
이 작가는 안 의사의 시대인식을 그린 소설 불멸을 통해 그가 겪는 혼란된 역사속에서 순간순간들을 사실과 문화적 감각으로 접근해 주목을 받았고 역사소설에서의 백미가 역사적 진실임을 알렸다.
안 의사는 당시 흩어진 의병세력들 사이를 오가며 단결을 촉구했고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를 암살해 수년간 계획해온 일을 실행에 옮겨 민족의 얼을 깊이 심었다.
“역사적 시점에서 안 의사의 사형선고에 대해 두가지 해석이 있다. 하나는 일본사람 시각은 살인자 또는 테러리스트란 일개 단독살인으로 축소 왜곡했고 러시아와 일본과의 패권대툼에서 일본을 편든 일부 가톨릭 조선교구 신부들은 안 의사의 의거 행동을 폄하해 사형당할 행동을 했다고 주장하고 고해성사 내용을 일본 경찰에 신부가 밀고해 백범 김구 등 독립의사들이 투옥되기도 했으나 이어 노길한 대주교, 김수환 추기경등에 의해 가돌릭교계에서 안중근 의사의 복권운동에 나섰다”
또 안 의사는 15세때 동학군 활동을 시작했으나 동학운동이 러시아를 막기위한 친일활동으로 변질되자 동학군에 대항하는 의병활동을 폈고 조선인 모두가 소멸시켜야 할 대상 1호로 지목돼온 이등박문을 살해해 조선인은 물론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가 “안중근 그 사람 잘했다”는 일화가 말해주듯 해외 반응도 매우 긍정적이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