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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달픈 시정마의 삶…씨수말 받아들일 준비까지 배역

제주도에는 KRA가 운영하는 경주마목장이 있다.

수십만 평의 넓은 부지에 현대식 마사와 푸른 초지를 갖춘 이곳은 마필 생산의 본산이기도 하다.

한 마리에 40억 원을 주고 미국에서 도입한 수준급 말을 비롯, 고가의 씨수말들은 평소엔 목초를 배회하며 한가로이 지내지만 유채꽃이 노랗게 필 3월부터는 자식생산에 바쁜 일정을 소화한다.

그러나 달콤한 사랑에 젖는 씨수말과는 달리 종부 도우미로 일컫는 시정마에겐 잔인한 봄이기도 하다.

봄철에만 발정을 하는 말은 임신기간도 11개월로 한철을 놓칠 경우 생산농가에겐 타격이 크다.

암말은 발정기가 돼도 겁을 먹거나 부끄러움을 타 수말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발길질로 수말을 쫓아내기도 한다.

이럴 때 등장하는 시정마는 암말에게 끈질긴 구애와 애무로 마음을 열게 하고 씨수말을 받아들일 준비까지의 배역을 충실히 하나 정작 볼일은 뒤에서 대기하던 우수한 혈통을 이어받은 씨수말이 차지한다.

좋은 씨앗을 갖지 못한 죄로 헛물만 켠 시정마는 목전에서 벌어지는 황당한 일에 억울해하며 울부짖고 발을 동동 구르지만 싸늘한 퇴장만이 기다린다.

잡종마란 태생적 원죄를 가진 시정마를 한층 눈물짓게 하는 대목은 지체 높은 씨암말과의 몰래 사랑을 막기 위해 사타구니에 가죽으로 만든 정조대까지 차는 수모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치 않는 임신으로 태어난 자식은 호적에도 올리지 못해 2대에 걸쳐 설움을 당한다.

제주경주마목장엔 올해로 15년째 시정마로 활약하는 한라말 ‘철원’(22세)이 있다.

한때 경주마로 활동했던 ‘철원’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오랜 기간 맡은 바 소임을 묵묵히 해내고 있다. 시정마도 간간이 잡종 암말과 사랑을 나누는 기회를 갖는 것이 아마도 위안이 됐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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