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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바쁜 도시민들, 농촌에서 느림의 여유 갖자

주민들 삶의 질 향상 기여
각 지역 자연 등 보존해야

 

며칠 전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는 아들 녀석과 단 둘이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모처럼의 여행이라 모든 일정을 아들에게 맞췄다. 아들은 많은 것을 체험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나는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으로 열심히 운전을 해야만 했다.

이렇게 아들과 보낸 며칠이 참으로 행복했지만 한가롭고 여유로운 시간을 많이 갖지 못함이 못내 아쉬웠다. 아들에게 자연의 넉넉함과 푸른 초록의 마음을 갖도록 좀 더 많은 시간을 주고 싶었던 것이 아버지로서의 바람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느림의 도시, 즉 슬로시티가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느림이란 환경, 자연, 시간, 계절, 우리 자신에 대한 존중의 다른 이름이다. 그런 것들을 조화롭게 해서 살아가는 ‘달콤한 인생’이 바로 느림이다.

‘느리게 살자’는 ‘슬로시티 운동’을 창안한 이탈리아의 파올로 사투르니니 전 그레베 인 키안티 시장은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집에서 태어나 느릿느릿 살아가는 사람이다. 평소 e메일도 잘 쓰지 않고, 전화도 잘 받지 않는다고 한다. 천성이 느긋하지만 시장으로 재직한 15년간은 무척 바쁘게 보냈고 2002년 ‘슬로시티’ 정책을 도입한 뒤에는 더욱 그랬다고 한다.

그가 처음 슬로시티 정책을 도입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과거 지향적이고 발전을 멈추자는 것 아니냐며 반대가 심했다. 그러나 운동이 정착되면서 소매상들이 살아나고 경쟁력을 갖게 되었으며, 함부로 새 건물을 짓지 못하게 하고 가능하면 오래된 건물을 고쳐 쓰게 함으로써 집값이 올라가고 주민 소득은 더 늘어나게 되자 지역민의 참여가 더욱 활발하게 됐다.

그레베 인 키안티에는 아주 작은 냉장고만 있다. 주변에서 생산되는 신선한 채소나 고기가 가까운 데서 즉시 공급되므로 집안에 쌓아놓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큰 냉장고가 필요 없다.

로칼 푸드 개념이 도입된 것이다. 또한 인스턴트식품을 먹지 않는 것이 몸과 마음의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교육시킨 덕에 코카콜라 같은 음료는 거의 판매되지 않는다고 한다.

대기업 자본이 들어오지 않고,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지역 사람들이 소비하면서 지역 경제도 살아났다. 사람들이 일하러 가는 거리도 짧아졌다.

파올로 사투르니니 전 시장이 슬로시티 운동을 착안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도시화가 위기를 맞고 농촌으로 귀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부터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와인과 올리브 등 전통 음식과, 삶의 뿌리의 가치를 슬로시티 운동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이성적으로 발전시키면 지역경제 뿐 아니라 주민들의 삶의 질도 향상된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슬로시티를 도입하게 된 이탈리아 농촌의 여건이 현재 우리나라와 매우 흡사함을 알 수 있다. 우리 역시 농촌의 동공화가 심화되면서 지역경제가 어려움을 겪었지만 최근 도시에서 귀촌, 귀향하는 인구가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도시민들 역시 ‘빨리, 빨리’의 도시생활에 지쳐 휴식과 안식을 간절히 추구하고 있고 그 대상지역으로 전원의 농촌을 가장 많이 선호하고 있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완도군 청산도, 신안군 증도, 담양군 창평면 등 여러 곳에서 슬로시티 인증을 받았다.

또한 제주도에는 여유롭게 걷고 즐기는 올레길, 지리산 일대에는 둘레길을 만들어 찾는 이들에게 자연의 여유로움을 선사하고 있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는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국토 전체가 슬로시티로서의 기본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된다. 즉 우리사회는 어느 나라보다 빠른 변화를 요구하면서도 가장 여유롭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지척에 있는 아주 선택받은 나라인 것이다.

이처럼 아름답고 풍요로운 자연과 문화를 이어 받은 우리가 앞으로 슬로시티를 만들기 위해서는 각 지역들이 가지고 있는 자연과 풍습, 먹거리 등을 잘 보전하고 가꿔가야 할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더욱 발전 할 수 있는 원동력을 재충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농촌을 사랑하고 가꾸고 보존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김명수 (농진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농업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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