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초반 서울의 무허가 판자촌 등을 정리하고자 서울 외곽에 하나의 도시가 개발됐다. 그러나 대규모 인구가 이주됐음에도 도시기반시설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택지 정리는 부실했고 상하수도 및 전기시설 등도 미흡했다.
생활 불편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생계 대책은 더욱 막연했다. 이주민 대다수의 생계 근간은 서울 도심에서의 일거리였다. 하지만 교통시설이 부실해 서울 도심으로의 소통은 매우 힘들었다. 관련 관청인 서울시, 경기도, 광주군 등에 생활 및 생계를 위한 대책 마련을 호소했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할 뿐이었다. 마침내 이주민들은 도시개발 전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분기했다. 바로 우리 도시 빈민사의 기념비적인 사건인 광주대단지(廣州大團地)사건이다.
성남의 도시형성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벌써 40여년전의 일이다.
하지만 아직도 ‘도로가 가파르다’, ‘주거공간이 밀집돼 있다’, ‘도로가 좁다’ 등 성남의 악명(?)이 비롯된 연유이다. 80년대 후반 분당 신도시가 개발돼 성남에 편입됐고 최근에는 판교 신도시가 개발됐다. 한데 분당과 판교에 사는 이들은 거의 ‘성남에 산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분당에 산다’ 또는 ‘판교에 산다’고만 얘기한다. 악명으로 가득한 구성남과 분별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나는 구성남의 한 복지관의 관장이다. 처음 관장으로 임명된 이후 여러 가지 걱정이 앞섰었다. 다소 거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주민과의 관계 형성도 그 걱정거리의 하나였다.
아니나 다를까 한동안 주차문제로 골머리를 앓은 적도 있었다.
복지관 주차공간은 주민의 주차편의를 위해 개방돼 있었다. 한번은 퇴근하려는 직원의 차가 누군가의 차에 의해 나갈 수가 없었다. 여러 차례 전화 연락을 했지만 이내 차주는 나타나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직원의 목소리도 분명 높았을 것이다. 한데 차주의 대꾸는 더욱 가관이었다. ‘XX년들이 돌아가면서 X랄이야.’ 나중에야 그 얘기를 전해 들었다. 분명 주민의 편의를 위한 개방이었다. 그리고 그 운영에 있어서는 선의의 협조가 전제돼야 했다. 하지만 그저 자기만을 고집하는 이러한 무례는 용납할 수 없었다. 이후 난 어린이집 아이의 등하원 안전, 어르신 및 장애인의 이동 편의 그리고 직원 주차 등을 근거로 하여 주차장을 폐쇄했다.
지역사회 주민과 대립한 최초의 사건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러한 단호함이 오래 계속되지는 않았다. 몇 달이 지나 슬며시 예전과 같이 다시 주차장을 개방했던 것이다. 한 사람의 무례로 인한 나의 단호함이 타당할지언정 주차로 인한 인근 주민의 불편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최근 가장 보람 있는 내 자신의 성과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복지관 관장으로서의 경험을 언급하곤 한다. 이는 너무도 든든한 내 동료들, 내 직원들과도 함께 했기에 가능했다. 또한 분명 지역사회주민과의 너무도 절절한 경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경험의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클라이언트를 위해 도움을 주고자 하지만 그 방안을 내내 찾을 수 없을 때 직원들을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있다. 이때 소개된 사례였다.
아직 어린 두 아이의 엄마가 있었다. 그녀는 이혼한 남편에 의해 원하지 않는 임신을 했으며 곧 출산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동안 아이를 돌볼 방법이 없었다. 주변에는 친인척도 없었다. 그렇다고 출산 및 산후 조리 그리고 그 동안의 보육을 위해 쓸 돈도 없었다. 복지관으로서도 도울 방법이 없는 막연한 사례였다. 한데 며칠 뒤 자연스레 문제가 해결됐다. 알게 모르게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이웃 주민들이 출산 및 산후 조리 동안 아이들을 맡아 돌보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이웃 주민들은 아무런 보상도 원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 집 밥상에 수저 한 벌 더 얹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성남의 한 복지관 관장으로서 너무도 값진 경험을 하고 있다. 팍팍한 삶의 모습들이 이웃 간의 관심과 연대로서 소중하게 지켜지고 있음을 조심스레 엿보고 있다. 그리고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미래 가능성을 감히 생각한다.
우리의 지난 과거는 비록 힘들지만 그래도 서로의 어려움에 같이 아파하며 대처했던 가난한 행복이 있었다. 하지만 물질적 풍요로움과 함께 가난한 행복을 잃어 버렸다. 물질 문명으로만 채워지지 않기에 공허한 우리의 모습이 부각된다. 여전히 가난한 우리의 마음이 이웃과 함께 하면서 풍요롭게 될 수는 없을까. 그러기에 성남은 내게 잃어버린 우리의 미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