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일상생활은 불확실성과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크고 작은 사고의 공포 속에서 살고 있다. 인천에서 발생한 인현동 호프집과 대우일렉트로닉스 화재사고가 아직도 우리들의 뇌리에서 살아지지 않고 있는데 최근 남동공단 신영산업 화재로 많은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언제 어느 시간에 있을지 모르는 화재사고에 마음 편안할 날이 없을 정도이다.
하루 24시간 중에서 5분이라는 시간은 아주 짧은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은 사람마다 환경이나 조건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당신은 시간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는가?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최후의 5분 밖에 없다면, 과연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어떤 이는 5분이라는 시간 동안 의미 없이 수다를 떨 수도 있고, 연인과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도 있다. 또 사형수에겐 살아온 인생을 정리하는 반성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소방관에게 5분은 어떨까?
소방관의 입장에서 5분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화재진압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긴박한 시간이다. 화재의 경우 화재가 발생한 직후 3∼4분 안에 산소농도가 평소의 18%에서 절반이 안 되는 7%로 떨어진다. 이 정도의 농도에서는 사람이 호흡곤란을 느끼기 시작하기 때문에 5분 안에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야만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소방차가 화재현장에 도착하기까지의 초기 진화가 매우 중요한데 화재초기 2~5분 안에 성패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결국 화재는 초기 5분 안에 진압하면 50% 이상의 피해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소방차가 현장에 도착하는 시간은 최소 5분 이내이어야 한다.
불이 난 지 5분쯤 지나면 대류와 복사현상으로 인해 열과 가연성 가스가 축적되고 발화온도에 이르러 순간적으로 폭발, 건물 전체가 화염에 휩싸인다. 일명 ‘플래쉬 오버(Flash Over)’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소방관이 가장 피하고 싶은 순간이기도 하다. 일단 플래쉬 오버가 생기면 화재진압이 훨씬 더 어려워지고 이로 인한 인명 및 재산피해가 증가는 말할 것도 없다.
구조구급 현장에서는 또 어떤가. 심장정지 환자에게 5분은 삶과 죽음을 결정짓는 갈림길이다. 심장정지가 발생해 심폐소생술을 4분 이내에 실시하면 소생확률이 50%, 5분 이내에 실시하면 25%이므로, 5분이 경과되면 소생확률이 희박하고 소생하더라도 뇌손상을 피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소방관의 5분은 화재처럼 속이 타들어가는 시간이며, 심장정지 환자처럼 심장이 멈춰버릴 것 같은 급박한 시간에 비유되는 것이다. 소방관들은 누구보다도 5분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기에 평소 여러 가지 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택밀집지역 등 소방통로 확보와 소방차 길 터주기 운동, 대국민 소화기 사용법 및 심폐소생술 교육 등을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이 비단 소방관서에서만 실시하는 일방적인 캠페인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내 가족 내 이웃의 소중한 생명은 스스로 지킨다는 생각으로 가정과 차량에 소화기를 비치하고, 소방차 진입이 용이하도록 진입로를 확보해 두는 건전한 주차문화를 실천해야 한다.
정부도 올해를 ‘화재피해저감 원년의 해’로 정하고 후진적 대형화재 근절과 화재로 인한 사망자 10% 줄이기 등 화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화재피해 저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소방 방재청에서 화재와의 전쟁을 선포하게 된 배경은 후진적 대형화재 빈발로 인한 사망자가 증가와 국민의 안전 불감증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키는데 있다.
긴급 차의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 서행하고 차선을 바꿔 소방차가 빨리 통과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하며, 주차 할 때도 소방차가 충분히 통행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성숙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오늘도 소방대원들은 현장에 빨리 도착하기 위해 양보해 주지 않는 차량들과 도로에 불법으로 주·정차된 차량들을 피해서 위험을 감수하며 곡예운전 중이다.
지금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가는 소방차는 누군가의 소중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다. 시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소방관들이 5분을 헛되지 않게 보낼 수 있도록 성숙된 시민의식이 절실히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