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 반만년 유유한 한강은 한국전쟁 한 복판에서도 한반도의 핏줄로 흘러왔다. 날마다 한강을 건너갔다 돌아올 때 사람들은 두루미처럼 목을 외로 꼬고 한강 한편을 바라보고 있다.
‘호국·보훈의 달’이면 할아버지 할머니 표정은 한강 수심보다 깊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지난 현충일. 곳곳에서 추모 물결은 뉴스의 몫처럼 됐고, 집집마다 태극기가 휘날리고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을 추모해야 할 이날도 여느 해 처럼 여행 갔다 돌아오는 자동차 행렬로 숲을 이루고 있었다.
필자는 지난 4월 초순경 동유럽 8개국 여행길에 올랐다. 체코 프라하공항에 도착해 육로로 독일 남동부의 문화예술의 중심도시 드레스덴에서 1박 하는데 옛 공산권 국가여서 그런지 불안한 마음으로 잠을 설치기도 했다.
우리는 자동차로 3시간을 달려 동서 아픔의 상처를 보았다. 붕괴된 베를린 장벽에서 한반도의 38선을 생각하지 않은 한국인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 다음 날 우리는 비극의 현장 아우슈비츠 유대인 수용소에 갔다.
학살당한 유대인들의 해골에 필자는 현기증이 나서 그날 밤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폴란드, 체코,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등 옛 공산권 국가 가운데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2개국만 입국 검문소가 존재할 뿐 6개국의 국경 검문소는 스스로 허물어져 잡풀만 무성해 국경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의 38선은 더욱 견고해지고 바다 땅 하늘에도 ‘선명한 선’이 사라지지 않는다.
12일간 유럽을 여행하면서 어느 고속도로 상에서 경찰관으로부터 검문을 꼭 한 번 받았다. 그 경찰관은 승객들에게 경례를 하면서 “여러분들이 장거리 여행 중이므로 모르는 사이에 위해물질이 침투됐을지 몰라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실시하는 것이니 이해해 주시고 남은 여행 즐겁게 하세요”라며 검문을 마쳤다.
그렇다. 애국이란 거창한 구호만은 아닌 것 같다. 경찰관이 자신의 나라를 대표하는 심정으로 외국인들을 정성껏 보살피고 안전을 책임지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들은 일제강점기 동안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한강과 함께 목숨 걸고 독립운동을 폈다. 피나는 항일투쟁으로 광복을 맞이했다. 이어 엄마도 아이도 몸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을 때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이 초래됐다.
지금 이 순간도 한국전쟁 휴전의 시간이다.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수많은 희생이 필연적이다. 한국 국군은 UN과 함께 남침전쟁에 맞서 싸웠고, 이름 없는 병사들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기꺼이 바쳤다. 그 고귀한 나라사랑 실천으로 한강은 역사를 쓰며 유유히 흐른다. 그 정신과 원동력이 세계 10위권의 꽃을 머금었다.
세계는 EU처럼 뭉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남북, 그리고 남에서 다시 지역감정으로 영호남이 뭉치지 못하고 현실이다.
지난 서해대전과 최근에 우리 안보가 중대하게 침해된 천안함 사건과 그 충격은 다시금 지금도 한국전쟁의 진행형 이라고 할 수 있는 휴전 중에 일어났다. 위기는 존재하고 반복되고 있다. 6·25의 총탄과 포성이 멎은 다음 그 소리를 보고 듣지 못한 전후 세대가 85%를 넘는 오늘날, 한국전쟁의 불씨를 우리는 생생하게 확인했다.
국가 사랑은 일제강점기에 맞선 독립운동, 한국전쟁의 이름 없는 병사의 목숨을 바친 숭고한 희생정신, 자유를 지키는 시민정신, 안보의식, 준법의식 등이 모두가 일맥상통한 것이다.
나라사랑은 누구나 자신의 위치에서 본분을 지키고 임무를 수행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호국보훈의 달. 우리 후손들과 함께 억만년 대대로 자유를 안고 흘러 갈 한강을 바라보며 선열들의 애국충정을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