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 마약처럼 전세계인들을 흥분시켰던 월드컵이 끝나간다. 야구, 농구 등 여러 구기경기의 경우에도 축구의 월드컵과 유사한 국제대회들이 있지만 유독 월드컵만이 세계를 흥분시키는 것은 왜 일까? FIFA의 탁월한 홍보 및 행정 능력과도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순수해야 할 월드컵을 FIFA가 너무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교환교수로 와 있는 호주에서도 이번 월드컵에 대한 열기는 한국 못지않았다.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을 외국인들이 붉은 악마라는 애칭으로 부르듯 호주에서는 남자 축구대표팀을 사커루, 여자 축구대표팀을 마틸다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히딩크 매직을 펼치며 32년 만에 사커루가 16강에 진출했기 때문에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 호주가 거는 기대는 컸다. 한국의 거리 응원을 본떠 시드니에서도 달링하버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거리 응원을 펼쳤지만 아쉽게도 사커루의 스타플레이어들이 퇴장 당하면서 16강에 오르지 못하고 탈락했다.
한국과 달리 호주의 인기 스포츠는 럭비와 크리켓이고 축구는 비인기 종목이다.
하지만 월드컵 동안 사커루에 보낸 호주의 성원은 대단했고 16강 탈락 후에도 페어백 감독과 선수들에 대해 비난보다는 격려가 많았다. 땅은 크지만 인구는 한국보다 적은 호주에서, 그것도 비인기 종목인 축구가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는 것만 해도 대견하다. 또 호주 축구의 발전을 위해 2006년 과감히 소속을 아시아 축구연맹으로 전환한 것이 필자가 보기엔 쉽지 않은 대단히 도전적인 발상이었다고 생각된다.
호주에서 이번 월드컵을 보면서 느낀 것이 많다.
달링하버 거리 응원의 경우 시드니 시가 나서서 자국팀인 사커루의 경기가 있을 때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경기가 있을 때도 응원전을 펼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 때문에 한국의 경기가 있을 때마다 많은 한국계 이민자, 유학생, 워킹 홀리데이 체류자들이 모여 응원을 펼쳤다. 서울시청 앞에서 다른 나라 응원전이 펼쳐졌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없는 필자로서는 새로운 경험이자 충격이었다.
호주의 주요 TV 방송국들은 1, 7, 9, 10처럼 채널 번호를 그대로 방송국 이름으로 사용한다. 우연인지 호주에서도 SBS가 주요 방송국들을 제치고 월드컵 전경기를 단독 중계했지만 이를 두고 방송국 사이에 분쟁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SBS 방송국은 SBS 라디오를 통해 한국어를 포함한 여러 나라 언어로 경기를 중계해 이민자들이 편안히 자국 언어를 들으며 경기를 시청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Special Broadcasting Service(특수방송국)의 약자인 SBS는 이중 언어를 사용하는 이민자를 배려해 만든 특수 방송국으로 평상시 각 나라에서 방송하는 TV 뉴스를 녹화해 30분씩 방영한다. 한국계 이민자를 위해 그날 새벽에 방송하는 연합뉴스를 녹화해 매일 방송하고 있다. SBS는 뉴스 이외에도 각 나라 영화를 선별해 방영함으로써 호주인들이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 통계를 보면 2005년 이후부터 결혼이민자의 수가 매년 3만 명을 넘어서고 있어 다문화사회에 근접하고 있다.
그리고 다문화가정이 도시보다는 농촌 지역에 몰려있어 경기도 역시 다문화가정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때이다.
결혼이민자들에게 한국어, 한국식 예절과 같은 한국의 문화만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호주처럼 이민자들의 고유한 문화도 인정하고 그들의 문화를 2세들이 잊지 않도록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
진정으로 경기도의 캐치프레이즈인 ‘세계 속의 경기도’가 되려면 경기도부터라도 다문화가정을 위한 정책을 하루 빨리 추진해야 할 것이다.
정규 방송 이외에 매일 10분씩이라도 베트남어나 필리핀어 같은 외국어 뉴스방송을 신설해 고국 소식에 목말라 하는 결혼이민자들의 향수를 달래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