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다. 참으로 찌는 듯한 삼복 더위에 이내 모든 의욕들이 맥없이 풀 죽이며 쳐져버린다.
잠시 월드컵 경기에 빠져 광폭의 열기를 뿜어내던 젊음의 상징 붉은 악마들 조차 작열하는 태양 앞에 그저 무력할 뿐 헉헉댄다. 밤조차 녹록치 않은 열대야의 연속이다. 삶이 숨 가쁘듯이, 휴가마저도 숨 가쁜 스케쥴에 매여 허덕거리는 일상의 의례가 돼 버린 지 오래이다.
한 없이 몰리는 피서객과 밀리는 아스팔트 차도 위에서 푹푹 녹아내리는 여름을 땡볕으로 고스란히 맞는 한 여름의 피서는 인산인해 속에서 맞는 사람 구경과 쓰레기 구경이 아닐런지.
호모루덴스적인 멋진 휴가란 아예 기대조차 어렵다. 떠남과 돌아옴의 지친 여정 속에 어느새 휴가는 실종돼 버린다.
서늘하리만큼 시원한 북극의 바람과 얼음 한 조각이 못내 아쉬움으로 떠오르는 한 낮, 필자는 학교 앞 캠퍼스 플라자의 책방엘 자주 들려본다.
방학 중이건만 한 여름의 독서가족들이 늘 책방 안에 그득하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그들은 책장 사이 사이 나무벤치에 여유롭게 앉아 아빠, 엄마, 아이들 한 가족 모두가 옹기 종기 목하 독서삼매경 중이다. 문득 박목월님의 시가 떠오른다. 술 읽는 마을 마다 타는 저녁 노을 대신 책 읽는 마을 마다 피어오르는 행복 노을이 연상된다.
열기가 그리 강할 진 대, 책방 안은 놀랍도록 시원하고 청정하다. 어디선가 향긋한 그린 파파야가 묻어나올 듯하다.
이보다 더 멋진 블루오션 바캉스가 어디 있으랴.
잔잔한 음악과 함께 창 밖으로 비치는 책 읽는 사람들의 재미있어 불그레 상기된 얼굴들이 부러움으로 다가온다. 몹시도 평안하고 행복한 모습들이다. 그 곳이 책방이면 어떠하고, 북 카페나 거실이면 어떠하리. 책이 있어 행복하고 그 책 속에 푸욱 빠져들어 마음을 묻고 시간과 삶을 담글 수 있어 행복한 학습시민들이 있다면 족하지 않겠는 가.
몇 걸음 밖으로 향해 런치 박스 샌드위치로 산뜻한 점심을 마친 그들이 다시 모여 가벼운 담소를 나누며 행복한 오후를 즐긴다. 어떤 이는 그 사이 평생학습센터에 올라가 수강생이 돼 미소를 그득 지으며 목하 학습 중이다.
마지못해 하는 시험공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 아름다운 풍경으로 전해온다. 책과 학습으로 채워가는 여름 휴가 야말로 그들이 인생에서 친 사고 중 가장 멋진 사고가 아닐런지.
어디 꼭 멀리 번잡스럽게 온갖 피서 장구 갖추고, 없는 돈 빚내어, 요란스럽게 바다로 산으로 해외로 비행기 타고 떠나야만 휴가이던가. 호젓한 책방과 공부방에서 이런 저런 인생삼모작 학습프로그램들과 만나보면 어떠할까.
이 여름이 끝날 무렵 그들 학습시민들 손엔 모두가 부러워 할 것 같은 쓸만한 자격증 두어 개 쯤 거머쥐어 있지 않을까. 길을 나서면 모두가 스승이라 했던가? 책 속에… 배움 속에…, 새로운 일자리와 삶의 향기가 승화돼 멋진 하모니를 이룬다.
이 여름 좌뇌와 우뇌를 넘어 그 사이에 있는 지혜로운 간뇌를 정련하고 뒤쪽 뇌의 지식정보 창고를 열어 나만의 앎으로 승화하는 앞쪽형 두뇌 인간으로의 변신이 문득 기대된다.
오늘 하루도 숨 막힐 듯 덥다는 짜증스러운 투정 대신 근처 한적한 책방에 들러 지혜의 소금창고가 내게 전해주는 더위를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비법이 담긴 블루오션 학습휴가를 즐겨보고 싶다.
책 읽기에 슬그머니 권태로워 질 즈음에는 어딘 가 곳곳에 숨어 있는 학습장에 들려, 모처럼 큰 부채 휘휘 여유로이 저으며, 늘 배움의 진한 향기에 푸욱 젖어들어 보고 싶다.
태평양 한 가운데 푸른 파도 위에서 즐기는 크루즈 여행 보다 훨씬 더 시원하고 훨씬 더 매력적일 것 같은 ‘學習 忙中閑’을 함께 즐겨 보자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