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 시대 한국은 ‘헝그리(hungry)사회’였다. 먹고살기도 어려웠고 민주주의에 대한 갈증도 심했다. 풍요로운 민주사회에 사는 지금 사람들은 불만으로 골이 잔뜩 나있는 상태, 즉 ‘앵그리(angry) 사회’로 바뀌었다. 민주화 이후 정치나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은 더 높아졌다.”
서울대 전상인 교수는 우리사회를 앵그리 사회로 규정하고, 그 원인을 고도성장 시대의 종언, 민주화에 따른 평등의식의 확대, 1997년 외환위기 및 그 이후 빈부격차의 구조적 심화 등이 쌓이고 어울린 결과로 진단했다. 특히 과거 정권에서 사회적 불평등과 상대적 박탈감을 정치적 의도와 경제적 무능에 따라 부단히 확대 재생산한 것을 보다 직접적 원인으로 지적했다. 앵그리 사회에서는 포퓰리즘이 성행하기 쉽다. 경제위기를 맞아 좌절과 분노를 겪고 있는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대중에게 영합하는 정책은 유혹적이다.
포퓰리즘은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의미가 모호하고, 불완전해서 신발은 있지만 맞는 발이 없다는 뜻의 지적이다. 미국과 러시아에서 농민운동으로 시작된 포퓰리즘이 남미형 포퓰리즘과 서유럽의 우파 포퓰리즘으로 진화했다. 그러나 포퓰리즘은 대체로 아르헨티나의 페론이즘(Peronism)으로 받아들여진다.
경제적 합리성을 배제하고 분배를 강조하면서 대중에게 영합하는 사회, 경제정책을 지칭한다. 복지 과잉이 재정건전성을 위협하고 국고를 바닥낸다는 우려가 담겨 있다.
하지만 포퓰리즘처럼 보이는 것이 반드시 나쁘기만한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있다. 미국에서는 올해 초에 스마트 포퓰리즘 (smart populism)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은 위기극복과정에서 윌가를 규제하고,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여기에 대해 두 가지 분노가 생겼다. 하나는 정부가 도를 넘어서 경제를 완전히 통제하는 터무니없는 일을 했다는 반발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가 서민을 돕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원망이다. 특히 공적자금은 얼마를 회수하든 상관없이 납세자의 돈이 주식·채권 투자자, 부실한 대형 금융기관 경영자에게로 넘어가는 것이어서 대중의 분노를 사게 된다.
오바마 행정부는 좌파를 달래려고 구제금융을 받은 대형 은행으로부터 1천억 달러의 수수료를 징수하고 새로운 고용대책을 마련, 인프라에 투자하고, 중산층의 세금을 내리겠다고 발표했다. 또 재정적자를 우려하는 우파 쪽에는 국방과 안전보장, 고령자 의료보험 등을 제외한 재량세출을 3년간 동결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것들이 제대로 이행되기만 한다면 경기침체의 탈출구 역할도 하고, 고용, 분배 등 고질적 경제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지금 친서민정책이 논란이 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년 동기대비 7.6%의 기록을 보이고 있지만 서민들의 체감경기는 계속 악화되고 있다. 특히 수출 중심 대기업은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는 반면, 중소기업은 부도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 소득 상위계층과 하위계층의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대통령과 정부가 나서서 대기업의 불공정거래나 캐피털 금융사의 고금리 실태를 지적하는 것은 이런 경제현실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친서민정책 드라이브에 대해서 포퓰리즘으로 흐를 것을 우려하는 경계의 시각도 있다.
서민정책이 자칫 재정의 낭비만 초래하는 퍼주기식 선심 정책으로 변질될 것에 대한 우려이다.
하지만 친서민 정책이 갖는 중요성과 당위성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어느 때보다 심각한 상황이고 저소득층과 중소기업 등 취약계층을 배려하는 것은 당사자만이 아니라 사회안정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특히 경제성장이 계층을 초월한 국민 전체의 몫이기 때문에 실질적 혜택이 서민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게 먼저 돌아가도록 배려하는 일은 사회적 정의에 합당한 일이다.
서민정책과 포퓰리즘은 구별해야하지만, ‘스마트 포퓰리즘’은 필요할 수도 있다. 혜안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