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아버지 불효자를 용서하세요. 생전 모습이 기억 나질 않아 차마 그 모습 조차 그릴 수 없는 이 불효자를…” 황해도 평산군 문무면이 고향인 강권철(88세) 할아버지는 북한의 어느 산천에 묻혀 계실 부모님 생각에 목놓아 울었다.
16일 오후 수원시 장안구 정자동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강 할아버지. 그는 올해도 어김없이 다가온 민족의 명절 추석을 앞두고 부모님과 조카들을 생각하면 목이 메인다.
지금은 돌아가셨을 부모님은 고향 땅 어느 산천에 묻혀계실지도 모르는데다 당시 6살과 3살박이던 조카 녀석들이 눈앳 가시 처럼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살아 생전 부모님께 큰 효도 한번 해드린게 없다는 강 할아버지는 신학을 배우고 기독교를 믿는 탓에 간단한 차례상으로 올 추석에도 북한 땅 어느 산천에 묻혀 계실 부모님을 소박하나마 찾아뵐 계획이다.
강 할아버지는 “어머니, 어버지 얼굴 조차 그릴 수 없는 이 불효자를 용서하세요. 고향 조차 가지 못하고 핏줄도 찾지 못하는 이 처량한 신세… 이런 세상의 비참한 처지가 있나…”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남북 적십자간 실무 회담 제안 등으로 이산가족 상봉이 급물살을 타면서 강 할아버지는 추석 이산가족 상봉에 실낯 같은 희망을 걸고 있다.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고향인 황해도 평산군 문무면 무구리에서 함께 살다 헤어진 조카 강무길(당시 6살), 강효길(당시 3살)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강 할아버지의 본명은 ‘강진학’으로 이 이름을 기억할 텐데 서울로 내려온 뒤 불가피하게 이름을 바꿔 혹시라도 기억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강 할아버지는 광복 후 1년이 지난 1946년 신학을 공부하고 자유를 찾아 서울로 내려왔다. 이 곳에서 경찰 생활을 하던 그는 암암리에 왕래가 됐던 당시 고향에 있는 가족을 서울로 데려오기 위해 1949년부터 추진했었지만 이듬해 6.25 전쟁이 터지면서 생 이별을 해야 했다.
그로 부터 60년이 흐른 현재. 당시 23살의 청년이던 그는 백발의 노인이 돼 애타게 북한에 있을 가족을 찾고 있다.
강 할아버지와 같은 처지에 있는 이산가족은 전국(2009년 기준)에 12만8천28명이며, 이중 4만2천123명은 숨졌고, 8만5천905명은 생존해 있다.
이들 중 도내에 2만3천873명이, 인천에 7천202명이 거주하고 있다.
한편 남북 적십자사는 17일 실무 회담에서 추석 이산가족 상봉 등 방안에 대해 논의하며 빠르면 10월 중순쯤 상봉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