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을 사격 선수의 길로 이끈 장본인인 아버지 김대원(2007년 작고) 씨가 막내딸의 첫 국제대회 입상 장면을 직접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감정이 북받쳤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취미삼아 하던 클레이 사격의 매력에 푹 빠진 김대원 씨는 아예 다니던 건설회사를 그만두고 김포시청팀 소속으로 선수생활을 시작했고, 김민지는 그런 아버지 덕에 일찍부터 사격과 친숙해졌다.
고교 1학년 때인 2004년 아버지의 권유로 본격적으로 선수의 길을 걷게 됐지만 휴일도 없이 이어지는 고된 훈련을 못 견디고 “사격하기 싫다”고 버티기 일쑤였다.
이 철없던 시절의 반항은 2007년 아버지 대원 씨가 폐암 선고를 받고 6개월간 투병생활을 하다 그해 11월 세상을 떠난 이후 김민지에게 내내 마음의 짐이 됐다.
2006년부터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국제대회에서 뚜렷한 성적을 올리지 못했던 그는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듬해 7월 스키트 한국 신기록을 작성한 여세를 몰아 2008년 5월 올림픽 대표 선발전 1등으로 베이징행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명 중 18위에 머무르는 ‘쓴맛’을 봤다.
그러나 다시 이를 악문 김민지는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에서 1등으로 대표팀에 발탁돼 국제대회에서 처음 시상대에 올랐다.
김민지는 “모두 아버지 덕이다. 그때는 스파르타식이라고 반항했는데 이제는 옆에서 지적해주시던 엄한 목소리가 그립다”며 “한국에 가면 아버지 산소에 찾아가 처음 딴 메달을 보여드리겠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