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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글을 쓰고 아내는 흙을 빚고 '문학과 테라코타'

양평 문호리 3천여평에 도내 최초 사설 문학박물관 탄생
18년간 사재 털어 수집 육필 원고·애장품·희귀본 수두룩
전시품목 200여점… 박물관 등록 기준 120점의 2배 달해

 


■ 양평 잔아 문학박물관 개관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860-2번지. ‘잔아 문학박물관’. 양수리 북한강변이 훤히 내려다뵈는 북서향 산기슭 3천여평의 구릉에 둥지를 튼 도내 최초의 ‘사설(私設) 문학박물관’이다. 올해 6월1일 정식 인가가 났다. 관장은 베스트셀러 작가인 소설가 김용만(金容滿·70) 씨. 100여평의 박물관 2동(棟)에 국내문학관(30평), 해외문학관(60평), 특별 전시관(10평)으로 각각 나뉘어져 있다. 너른 마당의 잔디에는 수십여종의 수목과 여러 무리의 ‘테라코타’ 像이 정겹게 반기고, 박물관 우측 연못에는 한 겨울인데도 버들붕어, 각시붕어, 잉어, 미꾸리, 개구리 등 십여종의 물고기들이 유유히 노닐고 있다. 영하권으로 뚝 떨어진 지난 9일 오후 이 곳을 찾았을 땐 겨울 비수기라 관람객은 드물었지만 그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풍수와 아늑한 분위기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문학의 힘은 위대하다’는 것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잔아 문학박물관’을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서울을 벗어나 팔당터널을 지나 양수교를 건너 352번 지방도로를 주욱 따라 10분여 북상해 양평소방서 팔당수난구조대를 지나자마자 도로 우측에 있다. 박물관이 자리잡은 ‘문호리(汶湖里)’는 예전 한양의 관문이다. ‘문호리(무내미)’ 나루터를 중심으로 주막이 즐비해 사람들이 북적거렸고, 붓을 씻는 먹물이 강을 더럽힐만큼 선비들이 많아 ‘문호리’(더러울 문, 호수 호)란 지명이 생겼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를 달리 문호 ‘文豪’로 쓰면 영락없이 ‘문학박물관’이 들어올 터다. ‘대문호(大文豪)’의 팔자를 가진 이가 자리잡을 터다. 이래서 ‘땅 팔자, 사람 팔자’가 맞아야 하는가 보다. 지명은 철저히 인연따라 온다는 말이 실감난다. 박물관 이름도 독특하다. ‘잔아’는 소설가인 김 관장의 작품 속 가상의 인물이다. ‘잔아’는 20대 초반의 재기발랄한 여성이지만 그 실체는 ‘김용만 소설가’다. 성장 과정에서 혹독한 슬픔과 아픔을 온몸으로 체험한 그의 분신이다. ‘잔아’를 통해 이와 대칭되는 삶의 환희, 기쁨, 행복, 인간의 진실성을 추구하려는 작가의 의지다. 그래서 ‘잔아’라고 이름 붙였다.

‘잔아 문학박물관’은 김 관장의 ‘인생 역정’에서 출발한다. 그는 나이 쉰둘인 지난 1992년, 이 곳에 칩거했다. 당시 ‘떼돈’을 벌어들이던 보쌈과 막국수 사업체 ‘춘천옥’을 과감히 정리하고 내려왔다. 글쓰기란 ‘배냇짓’과 ‘문학박물관’을 건립하기 위해서다. ‘필생의 업’에 시동을 건 셈이다. 그는 ‘주건야작(晝建夜作)’했다. 낮에는 6천여평(2007년 3천여평 매각) 경사진 터를 조성하고 밤으론 창작에 맹진했다. 칩거 이듬해 첫 소설집 ‘늰 내 각시더’(1992년 현대문학)에 이어 ‘칼날과 햇살’(1993년 중앙M&B), ‘인간의 시간’(1993년 문이당),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잠과 내 허튼소리’(1997년 랜덤하우스), ‘아내가 칼을 들었다’(2003년 랜덤하우스), ‘춘천옥 능수엄마’(2009년 JANA문학사)를 잇따라 펴냈다. 늦깍이인데도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이른바 ‘터의 발복(發福)’이다.

하지만 박물관 진행은 녹록치 않았다. 조경작업에만 2년 여 세월이 흘렀다. 최고 수준의 문학박물관, 대대손손 발길이 이어지도록 만들기 위한 그의 욕심이 과한 탓도 있었지만…. “소나무, 단풍, 주목, 철쭉, 목백합 등 10여종의 조경수를 구입하기 위해 전라 경상 경기 강원북부에 이르기까지 전국을 헤맸어요. 수천 그루를 사서 심었지요. 정말 모진 고생을 했어요.” 하지만 기후 여건과 옮겨 심는 방법이 잘못됐는지 90%가 고사했다. 그래도 지금 박물관 앞 너른 잔디에는 30여 그루의 소나무와 각종 20~30년 수령의 각종 200여 그루의 수목들이 사방으로 운치를 더하고 있다. 연못에도 당시 방생한 잉어, 버들붕어, 각시붕어, 송사리, 미꾸리, 개구리 등 수종의 물고기들이 그대로다. 이같은 역경을 거쳐 첫 박물관으로서의 선을 보인 것이 95년, 박물관 1동(60평·해외전시관)이다.

 


다시 우여곡절을 거쳐 2003년 관리사(세미나실) 1동과 주택(살림집과 서재) 1동, 2007년 국내전시관(30평), 특별전시관(10평)을 오픈했다. 이후 올해 개관 때까지 3년여 세월은 내부 인테리어와 전시할 작품, 사진, 육필 원고, 애장품을 수집하는데 걸렸다. 무려 18년의 세월이다. 사재를 털어 여기에 쏟아부은 돈만 40여억원. 가히 놀라운 열정이고 ‘올인’이다. 천정부지로 솟은 당시의 서초동 빌딩을 팔지 않았던들 지금 수백 억의 재산가로 편히 살았을 그다. 오로지 문학을 위해서 ‘사서 고생’을 했다. 그런 뼈를 깎는 노력과 인내가 ‘잔아 문학박물관’을 탄생시켰다. 박물관 내부는 경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입구에는 ‘문학과 테라코타의 만남’이라는 큼직한 문패를 기준으로 좌측은 ‘해외문학관’, 우측은 ‘국내문학관’이다. 박물관 외벽이 벽돌 건물인데 육중한 정통 유럽식 뮤지엄 같이 힘이 느껴진다. “북서향이라서 옹벽을 20cm 두께로 레미콘을 붓고 다시 50cm 스티로플을 넣어 방음 단열처리를 했어요. 진열장도 붙박이로 하지 않고 미장하고 페인트를 칠했어요. 바닥도 고급 타일을 깔았어요” 핵폭탄이 날아와도 끄덕없어 보였다. 너무 두껍게 짓는 바람에 ‘결로 현상’(공기와 벽의 온도 차가 15도 이상이 되면서 고온 다습한 공기가 벽에 부딪쳐 이슬이 맺히는 현상)이 생길 정도다. 국내문학관은 수십년간 손수 모은 애장품과 작가들로부터 증정받은 고서로 진열됐다. 작고한 유명 작가들의 육필 원고들도 수두룩하다. 전시 품목이 200여점, 박물관 등록 기준 120점의 2배에 이른다. 희귀본도 꽤많다. 일제 강점기인 1920~1930년대 펴낸 육당 최남선의 ‘심춘순례’(1926년), 황석우의 ‘자연송’(1928년), 노천명의 ‘산호림’(1938년), 조선어독본(조선총독부 시절 초등학교생 국어책. 1934년) 등등. 또 국내 최고(最古)의 순수 문예지 ‘현대문학 창간호’(1955년), ‘사상계’(1958년), 심훈의 유고작 ‘그날이 오면’(1951년) 등 작품들도 놓여 있다. 또 미당 서정주의 ‘2000년 첫 날을 위한 시’의 빛바랜 육필 원고를 볼 수 있다. 생애 마지막 해의 첫 날, 자신의 건강보다 나라의 장래를 걱정했던 미당. 원고지 칸칸에 정갈하면서도 힘이 밴 필체가 가슴 뭉클하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이들 작가들의 테라코타 흉상 또는 전신상이다. 박목월, 서정주, 김동인, 한용운, 구상, 백석, 심훈, 조병화, 천상병, 김소월, 노천명 등등. 이승의 삶을 ‘소풍’으로 노래했던 ‘귀천’ 천상병 시인, 단아한 한복 차림의 ‘진달래 꽃’ 김소월, 농촌 계몽을 일깨웠던 ‘상록수’ 심훈의 모습이 살아 반기는 듯하다. 좌측의 ‘해외문학관’은 이국풍이다. 김 관장이 세계 90여 개국을 돌며 13인의 세계적 ‘대문호’에 대한 작품과 인물을 생생하게 소개한다. 한 눈에 세계문학기행을 이룰 수 있다. 그의 산문집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잠과 내 허튼소리’에서 언급된 푸쉬킨(러시아), 카프카(체코), 세르반테스(스페인), 도스토예프스키(러시아), 에밀리 브론테(영국), 어네스트 헤밍웨이(미국), 괴테(독일), 세익스피어(영국), 존 스타인벡(미국), 톨스토이(러시아), 빅토르 위고(프랑스), 찰스 디킨스(영국), 가와바타 야스나리(일본) 등이다. 이들 모두 흉상의 ‘테라코타’로 우뚝 서 있다. 이 모든 조형물, ‘테라코타’는 김 관장의 부인인 여순희(60) 시인의 작품이다. 박물관 지하 30여평이 그녀의 작업실이다. 남편은 글을 쓰고 부인은 흙을 빚는다. 부창부수다. 독학으로 배운 조형예술이 이젠 한 경지를 이뤘다. 그녀의 작품은 ‘스토리가 있다’는 극찬을 듣는다. 그녀는 요즘 ‘잔아’의 조형물을 거의 완성했다. 3개월여 소요됐다. ‘잔아’는 이 박물관의 ‘정체성’이다. 당돌하고 지적 허욕인 강한 20대의 여성, ‘잔아’는 내년 1월1일 신년을 맞아 박물관 입구에 세워진다. 천재적 글쓰기 재능을 가진 소설가 김 관장의 ‘자아(自我)’가 비로서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꿈과 희망을 얘기한다. “돈 벌자고 명예 얻자고 박물관을 세운 것이 아니다. 오직 열린 문화 문학 공간으로서 ‘공유’하고 싶어서다. 오래 오래 영구토록 문학이 살고 인생을 살찌우기 위해서다” 문학을, 소설을 종교보다 상위 개념에 두고 싶어하는 김 관장의 정신이 ‘잔아 문학박물관’을 탄생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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