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3일 개봉
늦은 오후부터 저녁 식사 전까지 그녀(임수정)가 떠나기로 한 날, 두 남녀의 3시간을 영화는 집요할 만큼 세심하게 따라간다.
그녀는 남자가 생겼다며 5년간 살아온 남편(현빈)에게 헤어지자고 통보한다. 그로부터 며칠 후, 남편은 별다른 말없이 여자를 위해 짐을 싼다.
배려심 많은 그는 헤어지는 오늘까지도 여전히 그녀에게 커피를 끓여준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가 답답했던 그녀는 이별의 원인 제공자가 자신임에도 상대가 누구냐고 묻지조차 않는 그에게 새삼 또 화가 치민다. 마치 내일도 오늘 같은 시간이 또 이어질 것처럼 대화하고 행동하는 두 사람의 오후를 통해 관객은 그들의 5년을 들여다보게 된다.
헤어지기로 한 날, 두 남녀가 함께 보내는 3시간여를 거의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영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건보다 감정의 밀도에 집중하는 영화다. 섬세하게 움직이는 카메라를 따라 그들을 지켜 보는 러닝타임 내내 이별을 마주했으나 사랑이 아직 채 사라지지 않은 두 사람의 감정을 실감하게 해 준다.
‘여자 정혜’(2005), ‘멋진 하루’(2008)을 연출한 이윤기 감독의 작품은 큰 사건이 리드하지 않는다.
일상성이 극으로 강조돼 사소한 동작과 대사를 통해 관객이 실시간으로 인물의 감정을 같이 호흡하게 하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의 그와 그녀를 연기한다는 것은 배우 입장에서는 맨 몸 그대로 관객에게 노출되는 도전이라 할 수밖에 없다.
커피를 내리고 비 묻은 물건들을 닦고, 찻잔 하나하나 꼼꼼하게 포장하며, 매일 실제로 하는 사소한 동작들을 통해 서로를 향한 감정, 이별에 처한 복합적인 심정까지 관객이 마치 자신이 처한 상황처럼 느끼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절규하고 애원하고 매달리는 보통의 이별이 아닌 평소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는 연기에 처음으로 도전한 임수정과 현빈은 마치 지켜보기라도 하듯 바짝 붙어 다니는 카메라 앞에서 미세한 표정과 동작으로 인물의 심정을 실감나게 구현해 낸다.
집이라는 한 공간에서 남녀 배우 둘이 온전히 끌어가는 영화에 선뜻 노 개런티로 출연을 자청한 임수정과 현빈은 지난해 9월 20일에 시작, 총 13회 차였던 영화의 크랭크 업 날, 촬영 기간 내내 행복했다며 더 촬영하고 싶다며 아쉬워했다.
지난 2월 23일 제61회 베를린 영화제에 한국영화로 유일하게 공식 경쟁부문에 진출해 아쉽게 불발에 그쳤지만, 공식상영에서 1천600석 규모의 베를린 팔라스트 대극장을 매진시키며 현지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이 영화가 국내에서도 그 인기를 이어갈 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