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료실에 들어오는 모습이 너무 안스러워 보일 정도로 비만인 43세 남자환자의 병명은 고혈압이었다.
사실 진단은 2~3년 전에 받았으나 한 번 고혈압 약을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한다는 주위사람들의 충고(?)에 힘입어 버티고 버티다 직장 선배가 뇌출혈로 쓰러지는 것을 보고서야 두려움과 함께 ‘이제 약을 먹어야겠구나’하는 체념으로 병원을 찾은 것이었다.
하루 1갑 이상의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173㎡에 103㎏의 체중은 고혈압 뿐 아니라 당뇨병전단계와 고지혈증 등 전형적인 대사성 증후군을 만들고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고혈압에 대해 자세히 교육했다.
이에 환자는 체중감량에 대한 강한 동기가 생겼고, 규칙적인 운동과 철저한 식이요법을 병용해 방문 3개월마다 체중을 약 10㎏를 줄여 약 1년 후에는 30여㎏을 뺀 72㎏이 됐다. 복용 중이던 2정의 항고혈압제(혈압약)와 1정의 지질대사개선제(고지혈증약)을 끊을 수 있었고, 혈당도 정상을 유지해 당뇨병의 걱정도 덜게 됐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모든 고혈압 환자가 약을 끊지 못하고 평생 먹어야 한다는 통설은 잘못된 것이다. 고혈압은 유전적인 요소와 환경적인 요소가 더해져 나타나는 대표적인 생활습관병이다.
의학이 많이 발전하긴 했으나 유전적인 요소를 변화시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없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적인 요소를 바꾸려고 의사들이 환자분 듣기에 싫어하는 잔소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환경적인 요소란 음식을 짜게 먹는 고염식, 흡연, 비만, 운동부족, 스트레스 등이 있는데, 각 요소별로 대략 2~10㎜Hg정도의 혈압을 올리므로 이런 환경적인 요소를 많이 가진 사람이 음식을 싱겁게 먹으며 금연과 운동으로 체중조절을 하면 그만큼 환경적인 요소가 제거돼 혈압이 큰 폭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1~2정을 복용하고 있다면 고혈압약을 끊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고혈압약을 끊을 정도로 환경적인 요소를 바꾼다는 것은 말만큼 쉽고 만만하진 않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금연의 고지를 향해가다가 포기를 했으며,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몸무게를 줄이려 다양한 방법을 찾아 헤맸고, 수많은 사람들이 일주일에 3일이라도 운동을 하려고 얼마나 많은 계획을 세웠겠는가. 그런 사실을 보면 약을 끊기가 쉽지 않고 성공한 사람들이 많지 않은 이유가 짐작이 된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성공을 한다면 고혈압약를 끊을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이상의 매력적인 도전이 될 것이다. 반면에 3정 이상까지 복용해야 혈압이 조절되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유전적인 요소가 강해 환경적인 요소를 성공적으로 교정하더라도 유전적인 요소의 몫으로 1~2정의 고혈압약을 항상 복용해야 한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고혈압 환자들로부터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은 “평생 고혈압약을 먹어야 하나요?”이다. 항고혈압제는 평생 복용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의 기간(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복용하는 것이다.
같은 날 태어나도 죽는 날이 서로 다른 것은 이러한 유전적인 요소에 의해 수명이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질병인 고혈압은 특별한 증상이 없기 때문에 환자들은 그 합병증의 심각성을 간과한 채 위에 언급한 것처럼 버틸 때가지 버티는 게 사실이다.
높은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뇌경색으로 인한 뇌졸중, 협심증 및 심근 경색에 의한 심장마비, 신장이 서서히 파괴돼 말기 신부전으로 혈액투석을 받아야 하는 등 많은 치명적인 합병증을 야기하게 된다. 그 외에도 당뇨병과 심부전, 부정맥의 발병이 늘어나고 말초혈관질환을 동반해 사지를 절단해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하게 된다.
어찌 보면 당뇨병과 더불어 고혈압이 정상으로 조절되지 않더라도 증상이 없다는 건 우리에 대한 조물주의 시험일 수 있다. 고혈압이나 당뇨병이 정상을 벗어날 때 통증을 수반한다면 약을 먹지 않고 조절에 소홀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특별히 건강관리를 안 하는, 게으른 사람도 아프지 않으려 혈압과 혈당만은 정상으로 유지하고자 할 것이며 이것이 장수할 수 있는 요건이 될 테니 말이다.
정상혈압은 90/60㎜Hg에서 120/80㎜Hg 사이로, 고혈압은 18세 이상의 성인에서 140/90㎜Hg이상인 경우를 말한다. 큰 수치는 수축기혈압, 작은 수치는 확장기혈압이다.
그러나 105/65㎜Hg이나 95/60㎜Hg와 같은 수치의 혈압을 잘못 이해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것도 잘못 알고 있는 의학지식 중에 하나인 것이 이와 같은 수치들은 정상 범위 중에 낮은 쪽에 속한 정상혈압이지, 저혈압이 아니다. 오히려 심혈관에 부담을 적게 줘 심혈관이 합병증 없이 오래 버틸 수 있게 만드는 좋은 현상인 것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건강하고 오래 살기 위해선 고혈압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약이든 생활습관의 변화든 혈압을 정상으로 조절하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