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도지사의 셈법이 좀더 바빠지게 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에 책임을 지고 지난 26일 즉각 사퇴하면서, 내년 대선구도를 향한 김 지사의 발걸음도 한결 가속페달을 밟으며 한나라당내 유력한 ‘블루칩’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동안 각종 여론조사에서 독주를 견고히 해온 박근혜 전 대표에 이어, ‘찻잔 속의 미풍’처럼 한 자리수 후보군에 머물렀던 김 지사는 오 시장 사퇴 이후의 여권내 박근혜 대세론에 맞설 대항마로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일에 2박3일 일정으로 중국 방문길에 나섰던 김 지사는 공교롭게도 오 시장의 사퇴 당일인 26일 귀국 직후 현 상황에 대한 관전평(?)없이 숙고에 들어갔다.
■ 고민하는 이유는= 관건은 두 가지다. 당장엔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대한 정국 관망과 ‘김문수의 선택’이랄 수 있다. 그러나 김 지사의 사퇴시기 선택여부에 대한 고민은 좀더 늦춰질 수밖에 없게 됐다.
김 지사의 한 측근은 “사퇴여부 운운이 적절하지 않지만 보궐선거 이후로 고민해도 늦지않게, 간결하게 정리된게 아닌가 싶고 서둘러서 좋을 것도 없다”면서 “다만 긍정적인 시그널이 가까이에서, 선택의 폭도 좀더 다양하게 주어진 환경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고 전했다.
단순 여론조사 결과만을 놓고 보더라도 차기 대선에서의 박근혜 대세론은 여전히 현실이고 견고하지만, 한나라당내 계파구도와 후보경쟁력 강화, 대선후보 경선 흥행을 위한 3박자를 갖추기 위한 선결조건 탓에 김 지사의 대권 행보는 좀더 탄력을 받는 여건이 형성됐다는 평가다.
더욱이 두 자리수 턱걸이를 오르락내리락 해온 야권 대선후보군의 급격한 지각변동은 당장의 ‘대세론’에 대비한 비교우위에도 불구,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우려와 동시에 대선 패배의 불안감마저 증폭시키고 있다. 이른바 ‘이회창 학습효과’도 한몫을 더하고 있다.
야권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등장으로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문 이사장 간 ‘양강구도’가 구축돼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지난해 단일후보 경기도지사 출마의 실패를 맛본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경선 흥행에 있어 주요인물로 꼽힌다. 사실상 여권 내 가시적인 경쟁자가 없는 박 전 대표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 ‘결단’ 내릴 시점은= 현재로써는 총선 전에 결단을 내릴 것으로 보는 시각과 총선 후로 늦춰질 것이라는 양론이 분분하다.
총선 전 결단의 근거는 김 지사의 ‘총선 역할론’과 맞닿아 조기에 당내 지분 확장과 동시에 대권주자로서의 확실한 분위기를 띄워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나라당의 장담할 수 없는 총선 결과로 인해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전략적 후퇴론’도 만만치 않다.
이번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거리를 뒀던 박근혜 전 대표의 ‘침묵’이 당내 불만 소지로 상존한데다, 자칫 총선 전 결단으로 인해 입지를 좁히는 결과도 예상되면서 일정 부분의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늦춰져야 한다는 판단에 근거하고 있다.
도내의 한 지역구출신 의원은 “김 지사가 현 상황에서 경쟁력있는 대권후보로 가치 상승주인 것은 분명해졌다”고 평가한 뒤 “전임 이인제·손학규 경기도지사의 전례는 물론 총선 전·후의 당내 역학구도가 급변할 수밖에 없어 4월 총선 후에 판단해도 늦지 않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 지사도 지난 6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내년 총선 때까지는 지사직을 유지하고 총선 상황을 보고 대통령 출마를 결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오 시장의 사퇴가 변수로 작용하기엔 어렵다는 관측이다. 주가 올리기가 우선인 셈이다.
■ 당내 연대 가능성은= 총선 이후 MB정부의 킹메이커를 자임했던 이재오 특임장관의 경우 학생운동가 출신으로 지난 1990년 김 지사 등과 함께 민중당 창당에 참여했고, 지난해 인사청문회 당시 “김 지사가 대권후보로 나올 경우 적극적으로 뒷받침할 생각이 있다”고 언급했던 점에 비춰 연대 가능성도 적지 않다.
여전히 상존하는 정몽준 전 대표와의 우호적 교감도 지속되고 있어 ‘김·이·정’ 3각 연대가 모색될 경우 누구보다 김 지사의 경쟁력이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다는 해석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그러나 오 시장의 사퇴 결단이 당장의 비판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결코 대권주자로서의 완전 포기선언과 차별된다는 점에서 여전히 유효한 카드로, 오히려 총선 이후 새롭게 부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편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26일 발표한 일간 조사결과, 무상급식 주민투표 이후 대선후보 지지도에서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하락한 반면 김 지사 지지율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 전 대표는 지난주보다 5.4%p 낮은 28.4%를 기록, 3개월만에 20%대의 지지율을 기록했고, 김 지사는 2.9%p 상승(6.5%)해 3위를, 정 전 대표가 2.0%p 상승(6.1%)한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로써는 ‘오세훈 카드’의 중도하차로 인해 ‘김문수 카드’의 기대가치는 당분간 상승세를 탈 것으로 전망되나, 뚜렷한 추동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지속여부가 반짝세에 그칠 것이란 시각도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