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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칼럼] 환자와 함께 울고 웃는 정신과 의사

 

병원 밖에서의 사회적인 관계에서 사람들을 만날 경우 필자가 정신과 의사인 것을 알게 됐을 때 상대방들이 보이는 공통된 반응 중 하나는 ‘나한테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니 상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한 사람들 중 아직까지 아무도 나의 진료실에 따로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던 걸 보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가 이런 저런 심리적인 문제들을 안고 있으면서도 선뜻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기는 쉽지 않은 모양이다.

게다가 정신과 상담 중에는 너무나도 사적인 이야기들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마련이므로 사실 개인적으로 잘 아는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는 데에는 부담이 있기 마련이다.

나의 진료실에 들어서는 사람들의 각가지 사연들을 듣다보면 세상엔 참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두통을 주 증상으로 찾아왔던 삼십대 후반의 남자는 결혼 7년이 지나도록 부부간의 성생활이 없었다 하고, 손 씻기 결벽증이 있는 돈 만지는 직업의 이십대 은행원 아가씨는 병원에 오기 얼마 전에 자신을 기르고 키운 어머니가 생모가 아닌 걸 알게 됐다.

또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서둘러 결혼한 신부에게 성충동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신랑, 군 입대를 피하려고 대인기피증을 가장하는 남학생, 배달 나갔다가 증발돼 PC방에 처박혀 있는 게임중독자 세탁소 아저씨, 가출해 공원 등을 전전하며 노숙하는 여중생, 어린 자식들을 노모에게 맡기고 재혼했으나 여전히 행복하지 않은 아줌마, 어린 나이에 생활전선에 나서 가장 역할 하느라고 힘이 부친 알콜 중독 미장원 아가씨, 어려서 동네에서 성폭행 당한 상처로 평생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올드미스 아가씨, 돌봐줄 사람이 없어 영양실조인 할아버지, 잘 다니시던 길을 헤매거나 엉뚱한 장소에 가서 자신의 집을 못 찾아 파출소 신세를 졌다는 할머니, 오랜 시집살이와 남편의 바람기로 홧병이 들어 온몸 안 아픈데 없는데 아무리 갖가지 검사를 해도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하소연 하는 아주머니, 밤새도록 자다 깨다 선잠을 자면서도 눈만 감으면 온통 꿈으로 밤을 지새워 잔 것 같지 않다는 아주머니 등등 하루 종일 우울한 얘기를 듣노라면 나 자신 지독한 편두통에 시달리기도 해 어떤 땐 한손으로 머리를 누른 채 진료를 하기도 한다.

아무리 묘책을 짜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은 나를 좌절시키며, 하나도 달라지지 않는 환자들을 보면서 나의 무능함과 환자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심지어는 그들에게 짜증을 내기도 하는 못난 정신과 의사.

그러나 어디서도 터놓을 수 없었던 얘기를 하고 나니 후련해졌다는 은행원 아가씨, 다시 집으로 돌아가 공부를 하게 됐다는 가출 여중생, 술을 자제하게 됐다는 미장원 아가씨, 조울증 치료로 자살충동이 없어졌다는 올드미스 아가씨, 치매 치료 후 기억력이 좋아졌다는 할아버지, 우울증 치료 후 통증이 완화됐다는 아주머니, 항우울제 복용 후 꿈에 시달리지 않고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됐다는 아주머니… .이들의 호전 소식은 나를 기쁘게 한다.

/최번숙 삼육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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