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내 사랑을 고백할 때 마시는 고백 술, 서먹서먹한 친구나 회사 동료들끼리 인간 관계를 위해 마시는 서먹 술, 슬픔이나 고통을 이기고자 억지로 마시는 마약 술. 이들은 모두 엔돌핀을 자극하고 자신감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좋은 술의 예이다.
너무 심하게 마셔 인사불성이 돼 아무도 몰라보는 무례한 술, 하고 또 하고 같은 말을 반복해 상대방을 성가시게 하는 짜증 술, 주변 사람들에게 욕설이나 폭력을 유발시키는 폭력 술, 다른사람들에게 불쾌감과 피해를 일으키는 피해 술.
이들은 가족, 친구와 사회에 민폐를 끼치는 나쁜 술들의 예이다. 그러나 자신의 정신을 피폐화 시키고 건강을 악화시키는 건강 악화 술이 단연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얼마 전, 예쁜 두 딸과 함께 사는 아빠가 입원했다. 알콜성 간 경화로 혼수와 복수를 동반한 말기환자였다. 그래도 그런 아빠를 지극히 옆에서 간호하는 예쁜 딸들이었다.
물론 무능한 아빠를 위한 입원비도 그들의 몫이다. 건강한 몸을 일부러 술로 망친 알코올성 간경화 환자라 필자는 미워 죽겠구만 딸들은 그래도 아빠랑 함께하니 마냥 좋단다. 술을 마시지 말라고 아빠를 닦달 하지만 오히려 술 마시는 아빠를 이해하는 듯 심하게 굴지는 않는 모습이다. 술주정이 아빠에 천사처럼 착한 딸. 세상은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최근 일반인들은 오래토록 건강하고자 수백 만원을 지불하고도 아깝지 않는 고가의 종합검진을 자처하는 판이다. 그런데 하물며 일부러 과도한 음주로 자신의 간(肝)을 나쁘게 해 결국 간경화로 목숨을 재촉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많다.
장기간의 과도한 음주로 알코올성 간질환(지방간, 간염)이 초래되고 결국 간 경화에 이르게 되면 금주를 해도 원상회복은 불가능하고 점점 악화되어 생명을 잃게 돼 있다.
개인적 어려움과 인생의 고달픔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과음으로 건강까지 악화 되는 이중고를 겪는다면 더 더욱 억울할 일이 아닌가? 참으로 딱하고 안타까울 뿐 달리 방법이 없는 의사는 나쁜 술을 원망할 뿐 아니라 죄 없는 좋은 술까지도 미워하기 마련이다.
아련한 딸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아빠의 만용은 너무나 이기적이다. 지금이라도 금주하면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다. 때론 아빠 대신 내 자신이 딸들에게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든다. 사랑스럽고 예쁜 딸들과 오래 오래 함께하는 소박한 아빠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책임 있는 가장들이여, 술과 친해지기 쉬운 연말연시가 시작됐다. 비록 힘들고 어려운 환경일지라도 술에 매달리지 말고 자신과 가족을 위해 건강한 몸으로 그들과 오래 오래 함께하는 가족의 화목을 이끌어가는 구심점이 되시길 바라본다.
세상에 좋은 술만 있어 나도 한번 흠뻑 취해보고 싶다.
/김정권 삼육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