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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겨울이 오면 생각나는 사람들

 

날이 추워지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다. 내 자신부터 넉넉지 못한 가정형편 탓에 가난은 겨울추위보다 더 심한 추위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날이 추워지면 가난이 더 서럽고 시린 법이다.

며칠 전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섰을 때 봤던 광경을 잊을 수 없다. 건강도 챙길 겸 우리 시의 골목골목을 살필 겸 관용차를 놔두고 걸어서 출근한지 꽤 오래이다. 걷다보면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직접 민원을 챙길 수도 있으며, 더러는 무거운 짐을 실은 리어커의 뒤를 밀으며 난데없이 운동을 하기도 하는 그야말로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어서 좋다.

그날도 걸어서 출근하고 있었을 때였다. 군포소방서를 지나 산본역으로 넘어오는 도로에 자신의 몸짓보다 두 배는 더 큰 짐을 소형카트에 싣고 아슬아슬하게 굴러가는 무엇인가가 보였다. 사람이 보이지 않았기에 무언가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가까이 가서 보니 신문뭉치와 종이박스를 산더미처럼 쌓은 짐사태였다. 그렇게 작은 카트 위에서 굴러가고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 어마어마한 짐을 끌고가는 건 건장한 장년남자가 아니었다. 가녀리디 가녀린 할머니였다. 칠십은 훌쩍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자신보다 훨씬 큰 짐을 끌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 밀어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워낙에 위태롭게 쌓아서 자칫 건들면 바로 무너져 내릴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짐을 불안한 눈길로 쳐다보며 고갯길을 넘자 비로소 분주하게 움직이는 출근시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시민들 속에 묻혀 횡단보도를 건너고 육교를 넘어 시청 앞에 다다랐을 때 문득 할머니의 숨소리와 힘겨운 표정이 다시 떠올랐다. 이미 어쩌고말고 할 일도 아니었던 거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 군포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 관련 부서 과장을 불러 동절기 소외계층 지원 대책을 물었고, 미진해 보이는 것을 보완하라 일러놓고도 마음은 여전히 불편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명색이 시장이라지만 힘겨워하는 할머니 한 분의 짐조차 덜어드리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무력감이 한동안 머릿속을 짓눌렀다.

작년에 민선5기 군포시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가난한 사람들의 시장이 되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취임 후 두 번째 맞는 올 겨울을 앞두고 나는 과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얼마나 신경을 써왔던지, 진정으로 그분들의 친구가 돼주기 위해 노력해 왔던지를 되돌아보며 부끄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날이 추워져야 겨우 생각나고, 거리에서 힘겨워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나서야 겨우 가난한 사람들의 존재를 실감하는 나는 과연 시민들과의 약속을 지키고 있는 성실한 시장이긴 한 걸까. 늘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미쳐 챙기지 못했던 가난한 이웃들을 다시금 꼼꼼히 챙기는 그런 시장이 돼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병마에 시달리는 사람들, 가난에 찌든 사람들, 소외와 편견에 맞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장애인과 다문화가족의 애환과 시름을 들어주고 보듬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철저하게 준비해 나갈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겐 아무래도 더위보다 추위가 더 견디기 힘든 법이다. 더구나 주위의 무관심과 냉대는 피부에 와닿는 추위보다 더 견디기 힘든 고통일 것이다. 애초 약속했던 대로 소외된 이웃의 친구가 되기 위해 발로 뛰고 가슴으로 어루만지며 온 몸으로 추위를 막아주는 바람막이가 되려 한다.

그나저나 그날 아침의 힘겨운 운행을 마친 할머니는 얼마를 벌어서 얼마나 편안해지셨을까. 심심찮게 발견하는 종이 줍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시대가 만들어낸 당연한 풍경쯤으로 여겼던 마음을 우선 반성해 본다. 할머니를 다시 만난다면 망설임 없이 밀어드릴 것이다. 설령 카트운전이 서툴러서 짐이 거리에 널브러질지라도 주저함없이 밀고 끌고 할머니의 힘겨움을 나눠가질 것이다. 아직 겨울을 말하기엔 이른 줄 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겨울은 먼저 오고 늦게 떠난다. 한발 앞서 챙기고 나누는 따뜻한 시정을 위해 준비와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김윤주 군포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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