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살아가는 중에 누구나 크고 작은 통증을 겪는다. 통증은 해로운 물질로부터 물러나게 해 생물체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한편 환자에게는 치유과정에 필요한 휴식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반드시 필요한 현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순간적인 통증이야 그렇다 쳐도 만성적인 통증은 인간의 심성을 황폐화시키고, 인간관계를 파괴까지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통증을 잡기 위한 노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예전에 없던 ‘통증클리닉’이 점점 늘어가는 것을 보면 통증이 이제는 병의 징후를 알리는 신호를 넘어 병 그 자체의 위상을 차치하게 됐다는 인상도 지울 수 없다. ‘병이 있다’는 말을 흔히 ‘아프다’라고 표현하는 우리네 언어생활을 보아도 통증이 가지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한의원에 내원하는 환자들 중 상당수가 동통환자인 현실에서 통증을 없애는 문제는 필자에게도 언제나 화두가 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특별한 몸의 이상이 없는데도 생기는 통증에 대해 주목하게 됐다. 온갖 검사를 해도 기질적인 원인이 없는데도 계속되는 통증. 통증의 위치는 사람에 따라 허리가 되기도 하고, 목이 되기도 하고, 복통이 되기도 한다. 그저 신경성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통증. 무엇이 통증을 야기하는가?
미국 심신의학계를 이끌고 있는 존 사노 박사의 일련의 저작을 통해 많은 시사를 받을 수 있었다. 그의 주장은 이러하다. 통증의 90%는 마음에 기인하다. 내면의 깊은 분노나 억울함, 죄책감이 마음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신체통증을 야기시킨다. 몸이 아프게 되면서 정신적인 문제에 신경쓸 겨를이 없어진다. 몸 전체를 위해서는 이 방법이 더 낫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직장상사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다. 그러나 그를 죽일 수도 없고, 반항하기도 어렵다. 명치 끝이 그득해지고 가슴은 벌렁벌렁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의 심리상태와 무관하게 현실은 현실대로 돌아가야 한다. 출근길이 지옥길이다. 정신은 피폐해지고 참으로 견디기 힘든 나날이 계속된다. 이때 뇌는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뇌를 포함한 몸 전체를 존속시키기 위해 뇌는 어떤 부위에 통증을 유발한다.(그 기전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허리가 아플 수도 있고, 복통이 올 수도 있다. 이렇게 생긴 통증으로 인해 심리적 고통은 잠시 잊혀진다. 분노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이러한 통증은 지속된다.
공존보다는 무한경쟁을 강요하고 사회안전망이 튼튼하지 못한 환경에서 세계에서 가장 장시간 일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 일 자체가 주는 스트레스보다 그 일을 잘 해내기 위해 자신에게 가하는 스트레스가 큰 우리나라 사람은 이러한 통증에 더 많이 노출돼 있다.
통증해소의 첫걸음은 일단 내면의 분노를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어린 시절 부모의 이유 없는 꾸중일 수도 있고, 다시 생각하기 싫은 성폭력의 경험일 수도 있다. 인정하기 싫은 자신의 무능력일 수도 있고,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일 수도 있다. 소위 TMS(Tension Myositis Syndrome: 긴장 근육염 증후군)이라 불리우는 이 통증은 매사에 완벽을 추구하고,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싶어하는 유형의 사람에게 많이 생긴다. 물론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겪는 사람에게도 빈발한다.
통증의 원인이 무의식의 저변에 깔려있는 분노임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통증의 상당부분이 줄어들 수 있다. 통증의 원인이 몸(身)이 아닌 마음(心)에 있기에 명상프로그램, 요가수행, 종교생활 등이 유효한 치료방법이 된다. 증세가 심한 경우 철저하게 배려된 정신적인 상담이 필요하다. 더불어 한방의 치료(침, 뜸, 탕약)가 도움이 될 것이다.
/성성윤 인천 푸른솔한의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