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맞아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다양한 기부행사가 열리고 있다. 하지만 기부는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사람들이나 어려운 형편에도 평생동안 한푼 두푼 모은 것을 고스란히 내놓는 특별한 소수가 하는 일로 인식돼 있다. 이는 기부가 자신이 가진 범위에서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자연스런 문화로 정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기부에 대한 세 가지 오해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기부는 돈이 있거나 돈이 넉넉지 못해도 타인에 대한 사랑과 동정심이 가득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다는 자격에 대한 오해다. 두 번째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를 기부의 원칙이라고 보는 태도다. 세 번째 오해는 돈과 명예가 있는 사람, 대기업의 CEO, 정치인, 연예인 등은 적어도 재산의 상당 부분을 사회를 위해 의무적으로 내놓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같은 우리 사회의 시각은 기부문화를 확산시키지 못하고 강제적, 제한적으로 가둬두는 한계가 있다. 실제로 나누고 봉사하는 사람들이 억지로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의해 기부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복지시설 등의 봉사활동 현장을 가보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소모임이 무척 많아졌다. 예전에 유치원생들의 코묻은 돈까지 가져갔던 금강산댐 모금활동처럼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모금기관의 비리로 불신을 자초하는 일 이외에는 대다수 국민들에겐 나눔과 기부문화가 저변으로 확대되고 있다.
요즘 우리 사회 분위기가 혼탁하다. 사회는 이념으로 갈라져 극한으로 대립하고 있으며, 부패는 증가해 투명성 지수가 세계 39위에서 43위로 밀려났다. 경제성장은 주춤하고 물가는 올라 서민들의 생활이 나날이 어려워져가고 있다. 수출은 늘어나는데도 일자리가 없어 미래시대의 주역인 청년들이 절망하고 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생과 사랑으로 이 사회를 따듯하게 보듬는 고마운 분들이 있다. 놀랍게도 최근 우리 사회에 기부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기부 총액이 GDP 대비 0.8%나 돼 미국의 2.2%에는 못 미치나 선진국의 평균은 조금 웃돌고 있다.
지난 4일 한 노신사가 1억1천만원짜리 수표 한 장을 대로변의 구세군 자선냄비에 넣고 갔다. 거동이 불편하고 소외된 어르신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글은 남겼으나 자기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안철수 서울대 융합기술대학원장이 “공동체를 위해 공헌하는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필요할 때”라며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안철수연구소 지분의 50%인 1천500억원 이상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밝혔다. 자원봉사와 물품기부, 재능기부도 늘어나고 있다. 의사들의 무료 진료, 변호사들의 무료 변호가 어려운 이웃들의 아픔과 억울함을 덜어주고 있다. 진심으로 존경하고 본받을 우리의 이웃들이다.
우리 사회에 빈부격차가 심해져 갈등지수가 OECD 국가들 가운데서 네 번째로 높다. 복지논쟁이 뜨거운 것은 당연하다. 국가의 공공복지는 물론 필수적이다. 그러나 복지수요의 일부가 기부로 충당된다면 복지운영이 더 효율적이고 비용도 절감될 것이다. 의무적으로 바치는 준조세 성격의 세금보다는 자발적으로 내는 기부가 사회 분위기를 훨씬 더 따뜻하게 한다.
기부가 우리 사회에 하나의 문화로서 정착하기 위해 필자는 첫째, 사회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어려서부터 나눔과 기부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해야 한다. 둘째, SNS 트렌드처럼 다양한 형태의 기부문화를 적극 발굴·확산하고, 정책적인 지원이 이뤄지도록 해야 하며 셋째, 개미군단의 소액 정치후원을 가능하게 한 공제제도처럼 봉사, 기부에도 다양한 형태의 공제와 인센티브제를 지금보다 더 확대해야 한다.
가능한 많은 시민이 기부행렬에 동참함으로써 기부하는 사람이 존경받는 기부선진국이 되길 기대해 본다.
/이기우 민주당 수원권선지역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