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태준 회장의 제철보국의 열정과 추진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POSCO는 말 할 것도 없고 오늘의 대한민국 역시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발전과 철강 산업의 토대를 마련한 박태준 회장의 서거를 접하면서 그 분과의 인연이 떠올라 비통함을 가눌 수 없다. 이젠 고인이 돼 국민들의 기억 속에 깊이 남게 될 박태준 회장은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과 통찰력, 그리고 어떠한 반대와 압력에도 절대 흔들지 않는 강력한 리더십과 추진력을 갖춘 지도자였다.
故 박태준 회장과 필자의 인연은 해군 장교 근무 당시 김규섭 전(前) 해군참모총장을 부관으로 모셨던 경험과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원장이셨던 이한빈 전 총리의 추천으로 POSCO(구 포항제철)에 입사, 짧은 기간이나마 가까이에서 모시면서 시작됐다. 당시 우리나라는 1인당 GDP 규모가 100달러 정도였고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분류되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미국의 US Steel과 일본의 신일본제철이 주도하는 철강 산업을 보릿고개도 극복하지 못한 우리나라가 시작한다고 하자, 경부고속도로와 최근 영종도 국제공항 건설 때처럼 야당, 학계, 재야단체, 운동권 학생들의 극렬한 반대에 직면했다. 필자 역시 자본도 부족하고 기술도 턱없이 모자란 우리나라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다소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박태준 회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를 받들어 엄청난 반대와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이에 굴하지 않고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해 결국 세계1위의 철강제품 경쟁력을 자랑하는 오늘의 포스코를 건설했다, 그 결과 지금 우리나라 조선, 자동차, 전자산업은 세계시장을 제패했고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은 무역규모 1조 달러를 달성한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다. 박태준 회장을 가까이에서 모시며, 시대를 앞선 혜안과 통찰력, 거친 풍랑 속에도 중심을 잃지 않는 강한 리더십과 추진력이 지도자와 관리자에게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철강 산업을 위한 자본을 ‘대일청구권’을 통한 차관으로 충당할 때 ‘나라를 팔아먹는다’는 격렬한 비난이 있었고, 먹고살기도 힘든데, 철강 산업이 밥보다 중요하느냐는 근시안적인 반대에도 박태준 회장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미래를 내다보는 직관과 강한 추진력으로 강력히 밀고 나갔던 것이다. 필자가 40여 년간 공직생활을 하면서 어느 CEO보다 강한 열정과 신념을 갖고 성공적인 경영을 통해 탁월한 성과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 역시 고인으로부터 받은 영향 때문이며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또한 국내에서 고인의 업적에 대해 크게 평가받지 못하던 시절, 중국이 사회주의 체제를 청산하고 경제발전을 추구했던 개혁·개방의 초창기에 등소평이 ‘왜? 중국에는 박태준과 같은 인물이 없는가?’, ‘한국의 새마을운동과 같은 법국민적 운동이 없는가?’라고 말할 만큼 고인은 성공신화 그 자체였다.
뿐만 아니라 박태준 연구 열풍과 벤치마킹이 이어지면서 오늘날 중국경제 발전에도 큰 공헌을 했다. 이런 큰 인물이 한 때 정치현실 때문에 모함과 억측으로 수년간 해외를 떠돌며 유랑할 수밖에 없었고 유족들에게 남긴 재산이 없을 만큼 청렴함 때문에 어려운 생활을 하다 세상을 떠난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또 국가경제에 미친 고인의 큰 업적에도 살아생전에는 무관심 하다가 이제야 마치 보석을 잃은 것처럼 떠들썩한 세태를 모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최근 정치·경제상황이 무척 어렵고 혼란스럽다. 내년에만 두 차례의 선거가 있어 많은 국민들이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이 난무할지도 모른다는 깊은 우려를 하고 있다. 이럴 때 故 박 회장과 같이 미래를 내다보고 어떤 파도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력한 리더십과 추진력을 갖춘 정치·경제 지도자는 없는 것일까 아쉬움이 있다. 이번 기회를 빌어 국민 모두가 다시 한 번 故 박태준 회장의 뜻을 되새겨 보고, 이를 통해 대한민국이 한층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박해진 경기신용보증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