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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잊지 못할 선물

 

세상을 살다보면 기념해야 할 일들이 많고 많다. 생일, 결혼기념일, 기일 등 이름 지어진 무수한 사건과 사연이 우리를 지나쳐가고 또 다시 돌아온다.

형제가 많고 대가족인 우리 집 또한 달력을 넘길 때마다 군데군데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다. 남편과 내 생일은 불과 열흘 차이라서 생일을 챙기는 사람들이 부담이 될 것이다. 물론 내색은 안하지만 고만고만한 살림에 일주일이 멀다하고 돌아오는 이름 지어진 날들이 뭐 그리 반갑겠는가. 덕분에 부모자식, 형제 간에 얼굴 한 번 더 보고 식사 한 끼니 나누니 좋기도 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모든 것을 챙기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며칠 전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을 받았다. 초등학생 조카에게 받은 빨간 내복이다. 사내 녀석이 장난도 심하고 개구지기가 세상에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아이다. 슬며시 다가와 “고모 생일 축하해요”하며 상자를 내민다. 너무나 뜻밖의 선물이다. 단돈 1천원도 마음대로 쓰지 않는 아이, 아니 쓸지 모르는 녀석이다. 학용품이며 장난감 등 모두 부모가 사주면 사주는 데로 사용하고 아직은 돈에 대한 개념도 돈을 쓸 줄도 모르는 녀석이 주는 선물이라 더욱 반가웠다.

평소에 모아놓은 용돈 1만7천800원과 은행에 저축해 놓은 돈을 담보로 제 엄마를 조르고 졸라 2만원을 대출 받아 산 내복이란다. 사이즈를 묻는 매장 점원에게 젊고, 뚱뚱하지는 않다고 하면서 사왔다는 빨간 내복. 그 내복을 받는 순간 코끝이 찡하고 가슴이 먹먹했다.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 그 자체였다.

얼마 전 아는 사람이 딸이 아르바이트해 첫 급여를 받아 속옷을 사왔다고 자랑하기에 장난삼아 나는 누가 빨간 내복 좀 안사 주나 하고 중얼거린 것이 그 녀석의 마음에 걸렸나 보다. 빨간 내복을 입고 인증 샷을 찍으라는 가족들의 성화가 있을 만큼 그 녀석에게 빨간 내복을 선물 받은 것은 화제였다. 이제껏 받은 선물 중 최고의 선물이다.

누구든 선물을 받는다는 것을 기분 좋은 일이지만 이토록 감동을 주는 선물은 흔치 않을 것이다. 남편이 자동차를 사줄 때도, 보석을 선물 받을 때로 이처럼 큰 감동은 아니었다. 개구쟁이 철부지로만 알았던 녀석의 마음에도 저런 깊이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과 대견함이 한동안 나를 들뜨게 했다. 물론 1만원의 행복이라는 말도 많이 하지만 돈으로는 따질 수 없는 큰마음을 받았기에 오래도록 행복할 것이다.

설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고향으로 혹은 부모와 친지를 찾아뵙기 위해 대 이동을 할 것이다. 크고 값진 선물보단 함께 나누고 행복할 수 있는 마음을 전달하는 그런 명절이면 좋겠다. 명절 뒤 불화가 생기는 가정이 많다는 통계자료도 있듯이 물질보다는 정성어린 마음과 그 마음을 받아낼 줄 아는 지혜가 명절을 더 훈훈하게 할 것이다.

차마 입기도 아까워 서랍 속에서 자꾸 꺼내보는 빨간 내복처럼 올 명절엔 마음과 마음을 모아 모두가 행복한 그런 설날이면 좋겠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2006년) ▲안견문학상 대상(시) ▲시집 <푸른 상처들의 시간>

/시인 한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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