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와 함께 2월이 밀려 왔다. 거리 곳곳이 쌓인 눈과 빙판으로 몸살을 앓는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비명과 경적을 울리며 아찔할 만큼의 속도로 내달리는 견인차로 이면도로가 부산하다.
골목에 수북이 쌓인 눈이 얼어붙어 얼음판을 방불케 하고 미처 월동 장구를 준비하지 못한 차량은 애를 먹는다. 언제부턴가 내 집 앞의 눈을 치우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한다는 현수막이 붙어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우리 어릴 적엔 눈이 내리면 동네 어귀까지 눈을 쓸었다. 넉가래라고 하는 넓적한 나무판으로 눈을 밀어내고 우리는 그 한 켠에서 눈사람을 만들곤 했다. 누군가 시작하면 너나 할 것 없이 나와서 눈을 치우고 외진 곳까지 길을 내어 마을을 드나드는 사람이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 비탈진 밭에서는 비료 포대를 깔고 눈썰매를 즐겼고 수수깡으로 스키를 만들어 탔다. 얼굴이 얼어 벌게지고 손발이 젖어 꽁꽁 얼어도 추운 줄 모르고 한나절씩 눈싸움을 하며 놀곤 하던 기억이 새롭다.
하지만 지금은 눈이 오면 낭만보다는 걱정부터 앞선다, 며칠씩 질퍽거리는 거리와 좀처럼 녹지 않는 응달진 곳에서의 안전사고부터 걱정하게 된다. 많은 사람이 아파트 생활을 하지만, 많은 눈이 와도 눈을 치우는 주민은 거의 없다. 경비들만 분주히 현관 입구에 쌓이는 눈을 쓸어내고 길을 터주고 오르막에 염화칼슘을 뿌려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선뜻 그 분들의 일손을 덜어주는 주민은 거의 없다. 나도 몇 번이나 비를 들고 나서고 싶었지만, 왠지 쑥스러운 마음에 생각만 할 뿐 나서지를 못했다.
얼마 전 많은 눈이 내렸을 때 매장 앞의 눈 치울 걱정을 하면서 출근을 했다. 통행하는 사람이 많아 눈이 다져지면 치우기도 어렵고 응달이라 잘 녹지도 않아 빙판길이 꽤 오래가는 곳이라 서둘러 출근을 해보니 눈이 말끔히 치워져 있다. 한약방을 하는 옆 매장에서 치워준 것이 분명했다. 얼마나 미안하고 고맙던지.
그 후론 퇴근 전에 눈이 오면 말끔히 치우게 된다. 옆 매장에서 눈을 치우기 전에 내가 먼저 비를 들고 옆 매장까지 쓸고 나면 힘든 것 보다는 기분이 훨씬 좋다. 그래야 아침에 조금 출근이 늦어도 덜 미안하니 말이다. 이렇듯 작은 배려가 이웃 간의 마음을 확인하고 정을 들이는 것이기도 하다. 말하지 않아도, 애써 확인하려 하지 않아도 그냥 편안해지게 마련이다.
기상이변과 여러 가지 요인으로 폭설도 잦아지고 기온의 변화도 커지고 있다. 내 집 앞만이라도 치우겠다는 서로의 마음이 안전사고를 줄이고 이웃 간 화합을 도모하는 일이다. 벌금을 물려서라도 내 집 앞의 눈을 치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는 것은 날로 우리의 일상이 각박해지고 나 하나쯤이야 하는 방관과 이기심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이기심은 폭설에 묻고 그저 나부터 라는 작은 실천과 배려가 추운 겨울을 안전하고 포근하게 보낼 수 있게 할 것이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2006년) ▲안견문학상 대상(시) ▲시집 <푸른 상처들의 시간>
/한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