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역사상 가장 유명한 승부조작사건 중 하나는 미국 프로야구 월드시리즈에서 발생했다. 1919년 우승후보로 손꼽히던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신시내티 레즈와의 시리즈경기에서 고의로 패배했다. 23승과 19승을 올린 철완의 투수와 막강한 타선을 보유했지만 지기 위해 실책을 연발하는 선수들에게 승부는 무의미했다.
결국 우승후보팀의 허망한 패배는 당장 의혹으로 번졌고 결국 선수들과 관련자들이 법정에 섰고 선수들이 도박사들의 돈을 받고 승부를 조작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건으로 화이트삭스 소속 선수 8명이 야구계에서 영구제명 됐으며 ‘블랙삭스 스캔들’로 불리는 이 사건 이후 화이트삭스는 88년간 우승을 못하는 저주에 시달려야 했다.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인기가 높은 스포츠 종목일수록 돈의 유혹이 기승을 부린다.
요즘 우리 프로 스포츠계가 승부조작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한국축구의 최고봉인 K리그가 일부 선수의 승부조작으로 몸살을 앓았다. 국가대표를 역임한 선수가 개입됐고 연루된 선수 한 명은 자살하는가 하면 4명이 구속되고 11명이 영구제명 됐다. 월드컵 4강 신화를 자랑하던 한국축구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이었고 페어플레이를 통한 선수들의 땀방울을 사랑했던 팬들을 울린 절망적 사건이었다.
이런 어이없는 사건이 팬들의 뇌리에서 가시기도 전에 승부조작사건이 여타 프로 종목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프로 축구에 이어 프로 야구, 프로 농구, 프로 배구 등 소위 프로스포츠 빅4가 모두 연루됐다는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모두가 불법 도박업체와 연계돼 뒷돈을 받고 승부를 조작했다는 것으로 혐의내용도 구체적이어서 구단뿐 아니라 팬들의 가슴을 조이고 있다.
팬들이 승부결과에 열광하고 손에 땀을 쥐는 것은 과정이 공정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소설과 같이 음지에서 실력을 길러 혜성과 같이 등장한 무명의 선수가 스타덤에 올라서는 과정을 통해 팬들은 대리만족에 따른 희열을 느낀다. 진정 팀을 사랑하는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우승권에 멀어지고 바닥을 헤매는 성적에도 추운 겨울 웃옷을 벗고 함성을 지르는가 하면, 앳된 얼굴에 온통 화장을 한 채 극적 승부에 눈물을 흘리며 감격한다.
승부조작은 프로팀의 근간인 팬들을 몰아내고 선수들 스스로가 무덤으로 드어가는 위험천만한 행위다. 또 프로 스포츠선수들의 승부조작은 오로지 프로리그라는 목표를 향해 인생을 담금질하는 수많은 무명 선수들에 대한 모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