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가 지났다. 태양은 조금 더 가까워졌고 바람은 많이 폭신해졌다. 물가에 버드나무는 봄물을 끌어 올리느라 분주하고 마디마디 겨울을 견딘 꽃눈들이 몽실몽실 제 몫의 계절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나무는 가지 끝에서부터 새롭게 시작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난다. 깊어진 뿌리를 기둥삼아 가지 끝에서부터 계절을 시작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겨우내 몸 안에서 꽃을 만들고 잎을 저장하고 있다 봄이 되면 서둘러 잎을 꺼내고 꽃을 선보이는 나무. 그 나무를 위해 바람은 겨우내 구름을 모아들이고 태양을 끌어들이며 한 계절을 묵묵히 견뎌냈을 것이다.
시작이란 늘 새롭다. 요즘 학교 앞을 지나다 보면 졸업식으로 왁자하다. 부모형제 친구들은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꽃다발을 안기기도 하고 또 다른 시작을 축복하며 덕담과 그들의 앞날에 행운이 가득한 탄탄대로가 되길 기원해주기도 한다.
졸업 문화도 많이 바꿨다. 우리 졸업식 때만해도 졸업식 노래를 부를 때면 눈시울이 붉어졌고 끝내 졸업가 2절을 다 끝내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선생님과 친구들에 대한 이별의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는데 요즘의 졸업식장 분위기는 자유와 해방 축제의 분위기 그 자체다. 가끔 졸업식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미스런 사건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경찰관이 교문을 지키고 건전하고 안전한 졸업문화를 만들자는 캠페인에 나선 학생들이 보이기도 한다.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폭력과 사고가 줄어들 수 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졸업을 또 다른 시작의 알림이다. 누군가는 졸업을 끝으로 사회로 진출할 것이고 아직 공부를 마치지 못한 사람은 또 다른 과정을 밟아가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2월은 모든 것들의 교차로 인 셈이기도 하다. 나무는 겨울을 견디고 꽃과 잎을 꺼내기 위해 분주하고 졸업을 한 사람은 또 다른 과정을 시작하기 위해 교차로에 서 있다. 때로는 파란불이 커져 쉽게 교차로를 빠져나가기도 하지만 간혹 쉽사리 바뀌지 않는 빨간불 앞에서 초조와 긴장으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그나마 횡단보도가 있고 신호등이 있다면 그 신호에 맞게 움직이면 되지만 그렇지 못한 길도 가끔은 만나게 된다. 신호등이 꺼지고 점멸등만 있는 교차로에 서 보라. 횡단을 하자니 차들이 너무 빠르고 차 속을 비집고 건너자니 무서운 위협이 뒤따른다.
하지만 주춤거릴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는 조급함이 우리의 등을 떠밀기도 한다. 나 혼자만 이 위험한 길 위에 놓여 진 것 같은 불안과 초조에 휩싸인다. 이럴 때 일수록 호흡을 크게 하고 주변을 한번 돌아볼 여유가 필요하다. 한걸음만 물러서서 현실을 직시할 용기가 필요하다.
2월이면 많은 변화가 생긴다. 학년을 올라가는 학생은 친구들과 선생님이 바뀌고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학생은 변화되는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사회로 진출하는 새내기들의 기대와 각오에 맞물려 어려움 또한 클 것이다.
나무가 가지 끝에서 새로운 계절을 열듯 지나온 길을 되짚어 새롭게 시작하는 길에 밑거름으로 삼는다면 조금의 어려움과 두려움은 용기와 지혜로 극복할 수 있다. 새롭게 시작하는 모든 이들에게 힘이 되는 2월이면 좋겠다.
/시인 한인숙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2006년) ▲안견문학상 대상(시) ▲시집 <푸른 상처들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