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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분갈이를 하며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에 움츠렸던 목련나무 가지를 비추는 햇살이 따스한 아침이다. 겨울 동안 하얀 꽃잎을 감싸고 있던 겨울눈이 어느새 아기 손가락만큼 뾰족하게 자랐다. 버드나무 가지가 푸릇푸릇하고 겨울옷을 벗어버린 개나리도 노란 새 옷을 갈아입을 채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3월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새봄의 부지런하고 정직한 마음이 참 아름답다.

오늘은 베란다 창가에서 겨울을 난 화분을 꺼내 놓고 분갈이를 했다. 라일락과 무화과가 있는 화분은 너무 작아 커다란 것으로 바꿔 줬다. 나무를 들어내고 얽히고설킨 뿌리가 상하지 않도록 흙을 덜어내는 일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봄 냄새가 물씬 풍기는 뒷산에 올라가 썩은 낙엽이 섞인 부드러운 흙을 퍼다 퇴비와 골고루 섞어 잔뿌리를 펴 정성껏 심었다. 통 마늘같이 생긴 둥근 뿌리에 새싹을 내 미는 백합과 호랑이 꽃도 다른 화분에 옮겨 심었다. 지난 겨울 이상 기온으로 전국을 강타한 혹한의 날씨에도 한 줌의 흙속에서 자란 이들의 강하고 질긴 생명력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중국의 문학자 노신은 ‘한응대지발춘화’(寒凝大地發春華). 꽁꽁 얼어붙은 겨울 추위가 봄꽃을 한결 아름답게 피운다고 했다. 이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멈추지 말고 앞으로 전진하라는 말이다. 혹한의 추위가 봄꽃을 더욱 아름답게 피우듯 힘든 고난과 역경이 강인한 사람으로 만든다는 뜻이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 이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는 사람은 결코 큰일을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다. 성공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참고 견디며 노력하는 자만이 할 수 있다.

나무는 뿌리가 있어 몸을 지탱한다. 물을 흡수해 무성한 잎을 만들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뿌리는 자기가 한일에 대해 말을 하지도 않는다. 뽐내거나 자랑하지도 않고 스스로 나타내려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요즘 사람이 사는 세상은 그렇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헐뜯고 자기를 내세운다. 상대방을 모략하고 작은 실수 하나라도 용납하지 않는다. 사람은 입이 하나이고 귀가 둘이 있는 이유는 말하기보다 듣기를 두 배 더하라는 뜻이라고 했는데, 말로 상대방의 마음에 화살을 꽂는 전쟁을 하기도 한다.

작년에는 집안이 꽃향기로 가득했다. 봄에는 보랏빛 라일락꽃이 여름에는 새하얀 백합꽃이 그윽한 향기를 풍기며 붉은 꽃잎에 검은 점이 박혀 있는 호랑이 꽃과 어울려 좁은 베란다를 꽃밭으로 만들었다. 이들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던 해 모란장 마당에서 산 것이다. 남쪽으로부터 막 꽃소식이 들려오던 봄날에 작은 전원주택을 짓고 뜰에는 꽃나무를 가꾸며 조용히 살고 싶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 새잎이 돋아나는 라일락을 분갈이 하며 긴 세월의 시련과 고통의 삶을 뒤돌아보는 내 마음은 짙은 향기 그윽한 연보랏빛 꽃길을 걷고 있었다.

/고중일 수필가

▲방송통신대 행정학과 졸업 ▲수필로 등단 ▲문학시대 동인 ▲한국문인협회 회원 ▲성남문인협회 이사 ▲경기도신인문학상, 성남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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