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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말, 말씀

 

봄비 촉촉이 내리자 잔뜩 부풀었던 꽃망울들 서둘러 꽃 문을 연다. 봄비에 더는 못 견디겠다는 듯 나무의 껍질을 뚫고 나오는 새순들이며 지난 계절을 견딘 풀씨들 어디에 다 숨어있었는지 들판이 푸릇하게 올라선다. 빗방울 맺힌 봄에 카메라를 들이대자, 어린 순들 물기를 털어내는 모습이 경이롭다.

카메라 둘러매고 봄비 내리는 거리를 걷다가 커피향이 은은히 번지는 카페로 들어선다. 낮은 조명과 음악이 편안한 듯 세련된 분위기의 카페에서 차 한 잔을 주문했다. ‘녹차는 4천500원이십니다’ 한다. 만 원짜리 지폐를 내자 ‘거스름돈 5천500원 이십니다’ 하며 돈을 건네준다. 예의 바르고 친절한 그녀를 보면서 내내 불편한 마음으로 차를 마시고 나왔다.

그녀는 본인이 하고 있는 말의 의미를 알고 있을까. 그렇다면 사람보다 돈이 중하다는 뜻일까. 돈에 대해 그렇듯 깍듯한 예의를 차리는 그녀, 존대의 대상마저도 착각할 만큼 황금만능주의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이 현실일까,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이 그런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우리말의 표현 방법에 대한 미숙함인가. 우리나라 사람이 자국의 말조차 자유롭게 구사하지 못한대서야 하는 씁쓸한 마음에 붙들린다.

단지 카페 한 곳에서 경험한 것이 아니다. 대형마트, 쇼핑센터, 영화관 같은 젊은이들이 계산대에 있는 곳에서 흔히 보는 광경이다. 그들의 메뉴얼을 보면 기본 교육과정을 마쳤을 것 같은데, 어떻게 사람에 대한 예의보다 돈에 대한 예의가 더 바른지 언어의 올바른 사용법은 알고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을 해 보아야 할부분인 것 같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 올바른 말과 상대를 배려한 언어사용을 생활화해야 한다. 지나칠 정도의 예의도 문제가 된다. 물질은 물질일 뿐 예의를 갖춰야 할 대상은 아니다. 한 잔의 차가 존대를 받는 것이 아니고 차를 마시러 온 손님이 존귀한 분임을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등하교 시간 버스를 타게 되면 학생들의 언어가 많이 거칠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말의 반은 욕설이 섞여있고 소리를 지르고 좌석이나 차 내부에 흉한 낙서를 하기도 한다. 물론 소수의 학생 문제이기는 하지만 대중교통 이용에 대한 기본이 없다. 책임 있는 말과 행동이 자신의 품격을 높이고 자신을 올곧게 하는 근본이 된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

인터넷 용어를 사용해야 젊은이들과 쉽게 소통할 수 있고 은어, 속어, 비어, 줄임말 등 많은 변형된 말을 알고 있어야 신세대라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카카오 톡이나 문자를 주고받을 때 사용하는 이모티콘 등 여러 가지 문자나 기호로 간단하게 사용하기도 하지만 맞춤법은 아랑곳없이 소리 나는 대로 쓰는 말들을 보면 이러다 우리 한글이 변형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를 하게 된다.

올바른 언어사용이 우리와 우리 국민을 아름답게 만들 것이다. 렌즈에 담아내는 봄이 싱그럽고 활력이 넘치듯 젊은이들이 이끌어가는 문화가 힘이 되고 미래의 근본이 된다. 말과 말씀을 가릴 줄 아는 그런 문화를 가꾸어 가야겠다.

/시인 한인숙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2006년) ▲안견문학상 대상(시) ▲시집 <푸른 상처들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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