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을 위하여
강신주 | 천년의상상 | 416쪽 | 2만3천원
자유는 고독한 것이다.
그처럼 시는 고독하고 장엄한 것이다. 내가 지금 ―
바로 이 순간에 ―
해야 할 일은
이 지루한 횡설수설을 그치고,
당신의, 당신의, 당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다.
당신이, 당신이, 당신이
내 얼굴에 침을 뱉기 전에.
자아 보아라,
당신도, 당신도, 당신도,
나도 새로운 문학에의 용기가 없다. 이러고서도 정치적 금기에만
다치지 않는 한,
얼마든지 ‘새로운’ 문학을 할 수 있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정치적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도 인정하지 않는다.
‘내용’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형식’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시여, 침을 뱉어라> 중에서
19세기 프랑스에는 자본주의라는 거대 구조를 파고드는 철학자 벤야민이 있었다.
그는 인간이 자본에 억눌리고 잠식되는 현실을 깨부수고자 당시 자본주의 최첨단의 도시였던 파리에 침투했다.
그는 거대 구조의 바깥에서 이를 적당히 관조하는 철학자에 머무르지 않았고, 현실에 침투하여 구조를 직시하는 글을 썼다. 결국 그는 강력한 인문학자로 남는다.
그런데 우리 곁에 그와 같은, 아니 그에 비할 수 없이 강력한 인문정신의 소유자가 있었다. 시인 김수영이다. 그는 참여 시인이나 모더니스트 시인으로 오랫동안 오해되어 왔다. 그러나 김수영은 시인이자 혁명가였고, 진정한 인문정신의 소유자였다.
이 책은 그를 바로 보고, 곧추세우는 책이다.
김수영은 평생 시인이 되려고 했고, 시인으로 살고자 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에게 시인이란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며 자유를 살아 내는 이를 뜻했다.
그래서 우리가 김수영을 읽는 것은 곧 자유를 읽는 것이다. 그는 죽는 날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남루한 삶을 직시하고 불화를 일으키며 현실을 극복하고자 애썼다. 그리고 그 모든 고민과 과정을 시로 남겼다.
‘김수영을 위하여’는 강신주가 본격적으로 자기 지향점을 드러내는 책이다. 즉 철학자로서 인문정신이라는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대며 ‘자기 이야기’를 써 내려간 책이다.
이 책은 시인 김수영을 이야기하지만 결코 문학비평서가 아니다.
민족주의 시인으로 오해 받았지만 실은 강력한 인문정신의 소유자였던 김수영을 통해 한국 인문학의 뿌리를 찾는 철학서다. 다시 말해, 1960년대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이 땅의 자유와 인문정신에 대한 강신주의 철학적이고 문학적이며 인문적인 고백록이다.
‘불온’이란 키워드를 통해 인문학의 주요한 정신과 본질을 제시한 김수영이 한국 인문학의 핵심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직감한 철학자 강신주, 김수영의 글쓰기 원동력이었던 설움의 코드를 찾아내어 원고 집필을 제안한 편집자 김서연. 이 책은 지은이의 힘 있는 글쓰기와 편집자의 열망이 합쳐져서 완성됐다.